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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5. 2018

09. 사진 속 주인공을 찾아라!

<미친 발상법>





위의 사진 이력에 대한 내용은 이렇다.
언제: 1889년에
어디서: 뮌헨 소재의 한 초등학교에서
누가: 초등학생 52명이
무엇을: 사진을 찍었다.


세상의 기준을 거부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4분의 3을 잃어버린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타협과 상식, 전례를 무시하다.

앞에 제시한 흑백사진을 유심히 봤는가?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독재자라는 부정적 평가와 경제 부흥을 이끈 지도자라는 긍정적 평가를 함께 받는 철혈(鐵血) 재상 비스마르크가 통치하던 독일이다. 촬영 시기는 그가 28년간 재상으로 군림하다 물러나기 직전 해인 1889년이다. 또한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독일 뮌헨 소재의 ‘루이트폴드 김나지움(Luitpold Gymnasium)’에서 함께 공부한 52명의 학우다.

자, 이제 질문!
사진 속의 52명 학생 중에
특이한(?) 학생 한 명을 찾아보라.

100년도 더 된 사진이라 선명도가 떨어져 금방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필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사진 속 학생들의 포즈를 한 명씩 자세히 살피다 이렇게 말한다.

“세 번째 열, 오른쪽에서 두 번째 학생!”
“두 번째 열, 왼쪽에서 세 번째 학생!”
“맨 위쪽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학생!”

그 이유를 물으면 앞 친구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있다거나 목에 유일하게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거나 옆 친구 어깨에 왼손을 걸치고 있다는 등의 설명이 뒤따른다. 이 모두 필자가 원하는 답은 아니다. 이때 필자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동조를 거부하고 있는 ‘얼굴(표정)’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잠시 뒤에 “맨 앞 열,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학생!”이라는 답이 튀어나온다.

딩동댕~ 정답이다.

51명의 학생은 모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 학생만큼은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잘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라.


자, 질문 하나를 더 던진다.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학생은 대체 누굴까?

이번 질문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시사 주간지 <타임(Time)>에서 20세기 마지막 날인 1999년 12월 31일 자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The person of the century)’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바로 20세기 슈퍼 지성이요,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었다.


앞 사진 속 엷은 미소의 주인공은 아인슈타인이다. 그의 나이 10세 때의 모습이다. 아인슈타인은 1889년에 이 학교로 전학을 왔다. 학교는 전형적인 독일식 학교로, 매우 위압적인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복종심을 가지도록 강요했다. 그런 환경은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교육적 권위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 증오심의 표출인지 사진 속의 아인슈타인은 당시 분위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독일의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해 모두 차렷 자세에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사진이 인화되고 난 후 그런 모습을 발견한 담임선생은 아인슈타인을 교무실로 불러 호되게 야단치지 않았을까 하는 멋쩍은 상상도 해본다. 물론 한국적 발상이다.

그러고 보니 획일화되거나 정답 찾기에만 몰입하는 학교가 발상의 또 다른 장애물로 보인다.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으로 유명한 건축학자 리처드 벅미니스터 풀러(Richard Buckminister Fuller)는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천재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런 답을 했다.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다만 남들보다 학교 제도의 피해를 덜 입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마크 저커버그도 모두 대학을 중퇴했다. 이들 모두 학교 제도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입어 자신에게 잠재된 창의적 발상을 마음껏 펼쳤는지도 모른다.


권위에 저항한 발상 천재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보듯 창의적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상황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동조 거부), 항상 기존의 원칙을 깨뜨린다는 점이다.

빈센트 라이언 루기에로(Vincent Ryan Ruggiero)는 “생각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저서 《생각의 완성》에서 한 인간의 삶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했다.

•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만이 아니었다. 어떤 교사는 그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넌 앞으로 무슨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15세 때 그는 학교를 그만두라는 제안을 받았다.
• 그는 취리히의 스위스연방공과대학의 첫 입학시험 당시 시험에 떨어졌고, 지원 자격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스위스의 어느 고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 그는 스위스연방공과대학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학생이다 보니 교수들도 대학원 조교로 받아주지 않았고, 취직에 필요한 추천장도 써주지 않았다.
• 이후 그는 어느 기숙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해고당했다.
• 그는 공과대학에 열역학에 관한 내용의 박사 논문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거절당했다.
• 4년 뒤, 그는 베른 대학에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한 논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 논문 역시 거절당했다.

20세기 최고의 창의적 인물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이 이른바 세계적 명성을 얻기 이전에 맛보아야 했던 고된 삶을 소개하고 있다. 어른들의 눈에 어린 시절의 그는 건방지면서도 거만한 아이로 비춰졌다. 그는 항상 자기 생각을 믿고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취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최고의 성적을 받았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과목은 완전히 무시해 교사를 경멸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타협과 상식, 전례를 무시하고 단번에 핵심을 꿰뚫는 언동은 주변과의 마찰로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은 종종 개인주의자라고 비판받았고, 가장(家長)으로서는 완전히 실격자였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아버지는 사업과 건강이 모두 악화되어 아들에게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역으로 아인슈타인도 아들로서 아버지와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그는 학생이었을 때도 아버지 문제로 크게 걱정하고 심지어는 절망하기도 했다.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든 건 불행하게도 가여운 부모님이 행복한 순간을 맛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나를 더 아프게 한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우리 가족한테 짐밖에 되지 못한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댈러스 대학 토머스 웨스트(Thomas G. West) 교수의 저서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에 소개되어 있는 아인슈타인의 침울한 과거사 한 토막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1900년에 연방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일 년의 시간을 대부분 무직 상태로 보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지 못한 채 이듬해도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교사 자리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그런 아인슈타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도 꽤나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자 아버지는 마침내 교수에게 도와달라는 간곡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존경하는 교수님, 이렇게 제 아들을 도와주십사 요청하고자 펜을 든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아들은 지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크게 낙담한 채 지내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실패자이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애는 자신이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짐이 된다는 생각에 크게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중략) <물리학 연보>에 실린 아들의 논문을 한 번 읽어보시고, 우리 애가 생활과 일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힘내라는 격려의 말이라도 몇 줄 적어 보내주셨으면 하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행여 그 애에게 지금이나 가을쯤에 조교 자리라도 하나 주실 수 있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무례한 편지를 보내게 되어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참고로 아들은 제가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편지로 인해 아들이 상처라도 받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부모의 애절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비단 아인슈타인만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인물 중 상당수는 어릴 적 학업에 문제가 있었거나 사회 적응에 많은 혼란을 겪었다. 특히 조직의 동조를 거부하면서 야기된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캐릭터는 훗날 자신만의 고유 영역 개척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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