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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6. 2018

06. 곤란하지 않더라도 곤란한 얼굴을 하라.

<화가나도 바보와는 싸우지마라>



곤란한 얼굴을 한 여성이 오늘날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본 엄청난 기술로 그런 여성은 전략적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곤란한 얼굴은 어떻게 보면 최고의 무기다.



오기를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 남자들 중에는 약해져 있을 때 센 척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나도 곤란할 때 곤란한 얼굴을 하는 것을 꼴사납다고 여기며 자라온 인간이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봤다. 나는 운이 좋아서 항상 위험을 직전에서 피하곤 했지만 이 ‘강한 척’이 없었다면 더 쉽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경험상 도움을 구할 때는 물론이고 곤란하지 않을 때도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는 인간 중에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 타인의 힘을 이용하는 데 능숙한 것이다. 타인의 선의에 잘 편승하여 타인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증권회사에 근무했을 때의 일인데, 동기 영업사원은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나도 안 팔려요.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며 단골 고객을 만나러 다녔다. 교활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정말 능수능란했다.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무척 교묘했다.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웠나 싶어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정치인 시절, 선거를 응원하러 가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번도 선거에서 진 적이 없고 평소에 살뜰히 지역을 챙기는 선배를 응원하러 갔을 때다. 선배의 부인도, 선배도 “이대로라면 지고 맙니다” 하고 말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연설회장에서 지지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나누고 눈물을 글썽이는 지지자의 얼굴에는 마치 ‘걱정 말아요,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그는 미디어 조사에서도, 당 자체 조사에서도 큰 폭으로 압승을 거두리라 예측되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영에 “우세 보도는 마지막에 진영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해서 위험하다” “중간 결과는 관계없다. 부재자 투표를 제외하고 아직 아무도 내 이름을 찍어주지 않았다” 하고 필사적으로 위기감을 조성하여 진영을 분발시키고 지지자에게는 곧 눈물을 흘리기라도 할 듯 호소했다.

항상 이기는 사람이 “도와주세요”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이제 상대의 등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따라잡지 못했어요”하고 부르짖을 때마다 지지자가 당사자보다 더 진지해져 가는 것이 내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압승 보도가 나온 상황에서도 지지자에게 위기감을 불어넣는 연기에는 소름이 끼쳤다.

그에게 “진영이 긴장을 잃을 만한 말은 하지 말아주게” “위기감을 조성해줘” 하는 말을 들었지만 데이터를 보고 있던 나는 진심으로 위기감을 조성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에 비하면 나의 선거는 얼마나 미숙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세 보도가 나오면 기뻐하고 진영에는 이기고 있다고 선언해서 진영도 긴장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항상 바짝 추격당해 살얼음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결과를 얻곤 했다.

응원단도 강한 척을 하며 ‘승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후보에게는 ‘그럼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군’ ‘자신만만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들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은 강한 척은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자신감이 있을 때일수록 곤란한 얼굴을 하고 상대를 자신에게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항상 이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곤란한 얼굴을 하고 머리를 숙이는 인간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곤란한 얼굴은 사실 나쁘지 않다. 곤란한 인간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만 곤란한 척에도 정도의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곤란해 보이면 ‘도와줄 방도가 없다’라고 타인이 질려서 떠나고 만다. 반대로 별로 곤란해 보이지 않으면 “그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 어디서 어리광이야!” 하고 타인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실력에서 1.5배쯤 곤란할 때 짓는 표정을 지으면 된다. 단, 이것도 연출하기 나름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실은 곤란하지 않은데 곤란한 척을 해서 선거에서 이기는 선배의 사례도 있다.
  
곤란함의 정도가 지나치게 높지도 낮지도 않고 ‘저 사람 혼자서는 어렵겠는데. 우리가 도와주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모두가 생각할 정도가 가장 좋다.

그때 강한 척을 하고 “괜찮아” “이미 극복했어”라고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 타인은 당신이 적당히 곤란할 때 곤란한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돕고 싶은 것이다. 거북한 상대에게도 언제든지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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