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입대 전에 모래내에서 자취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가 10만 원 정도 했다. 지하방에 들어가서 일어서면 머리가 천장에 닿고, 누우면 다리가 벽에 닿았다. 방문 틈으로 쥐가 다녔으니 겨울은 찬바람에 고생 좀 했다. 모기, 바퀴벌레, 쥐며느리, 귀뚜라미 등과 같이 살았다. 한 번은 벌레를 잡는다고 에프킬라를 한 통 다 뿌려서 질식사할 뻔했다. 간신히 모래내 개천공원에 가서 2시간 누워 있다 왔다.
여름에 2층 아줌마하고 같이 손빨래를 하곤 했는데 여름이라 티셔츠가 헐렁해서 아줌마의 큰 가슴이 어찌나 출렁이던지. 아줌마는 수돗가에서 혼자 빨래하면 심심하다고 종종 나를 불렀다. 난 지금까지 그 퉁퉁한 2층 아줌마의 헐렁하게 늘어진 티셔츠보다 야한 옷을 못 봤다. 힘차게 출렁이던 가슴 때문이 아니라, 총각 시절에 갈아입을 옷이 별로 없어서 빨래를 자주 했다. 아주머니 얼굴은 금세 까먹었는데 신체 일부는 아주 오래 기억했다.
1층에는 주인집 할머니가 살았다. 형광등을 갈아주러 올라갔을 때 할머니가 자기 입을 수의를 얼마나 자랑하던지. 예쁜 수의 자랑을 세 번은 들은 것 같다. 죽음이 받아들여지나 보다. 아직도 “엄마 용돈 줘” 하는 자식이 있다고 한참 같이 욕해드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50대 울 아버지 벌이시네.
봄에 300만 원에 20만 원 방으로 이사를 한다. 할머니한테 내가 살던 방은 창고로나 쓰시라고, 누가 이런 방에 오겠냐고 했다. 자취 초짜인 나 같은 사람이면 몰라도.
“걱정하지 마. 방 나갔어. 30만 원에 13만 원.”
수돗가에 아줌마와의 추억과 빨래판 등 못 챙긴 짐이 남아 있다. 주섬주섬 챙기는데 다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서 있다. 못 보던 아이인데 예쁜 치마를 입고 있다.
“안녕. 너는 어디 사니?”
아이가 내가 살던 자취방을 가리킨다.
뒤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두툼한 가방을 들고 있다. 나는 빨래판을 들고 나왔다.
내가 겨우 도망친 곳에서 시작하는 사람을 본다. 내가 포기한 지점에서 누군가 시작하고, 내가 풀지 못한 숙제 앞에서 누군가 웅크려서 일한다. 아이에게 내가 견딘 겨울을 주고 왔다.
갈아입을 옷이 많지 않아 보이는 아저씨도 빨래를 자주 하겠지. 할머니가 수의 자랑을 할 테고. 50대 아저씨는 여전히 용돈을 타러 올 테고. 그리고 이듬해 봄에 소녀는 천만 원에 30만 원 정도 하는 곳으로 이사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