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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0. 2018

03. 여성 전용 지하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나고야라고 하는 곳은 도시의 건성(乾性)과 시골의 습성(濕性)이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공간이다. 기질적으로도, 풍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출판인 이와나카 요시후미(岩中祥史) 씨의 저서『 나고야학(名古屋學)』에는 이 지역의 특성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현실과 부합된 나고야의 압축된 설명이다. 인구 약 230만 명의 나고야는 역사와 산업과 교통의 요지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나고야에는 지하철 노선 네 개가 하루 종일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히가시야마(東山)선, 메이조(名城)선, 쓰루마이(鶴舞)선, 사쿠라도오리(櫻通)선이다. 이 4개의 노선 중 가장 붐비는 지하철이 히가시야마(東山)선이다. 이 외에도 나고야의 근교를 달리는 메이테쓰(名鐵)와 긴테쓰(近鐵)가 있다. 물론 JR 신칸센은 별도다.

“그동안 출퇴근 시간만 운영하던 지하철 여성 전용차량을 종일 시행하고 있습니다.”

나고야 시청 교통국에 근무하는 요시카와 다카토시 계장의 말이다. 나고야 지하철은 모두 시의 교통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나는 봄비가 다소곳이 내리는 날 나고야 시청 서관에 있는 11층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홍보 담당 도모사카 히로가즈 주사와 서울에서 수차례의 전화 통화 끝에 잡은 인터뷰 일정이었다. 그들이 내민 명함에는 ‘감사 선언宣言’이라는 고딕체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시민에 대한 감사함을 실천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느껴졌다. 요시카와 씨는 여성 전용차량에 대한 서류를 잔뜩 들고 자리했다. 표정도, 목소리도, 사뭇 진지했다.

“여성 전용차량 운영은 도쿄·오사카 등 여러 대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입니다만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종일 시행은 오사카, 고베에 이어 저희 나고야가 세 번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포스터 한 장을 내밀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포스터는 ‘히가시야마선, 평일의 시발(始發)부터 종발(終發)까지의 여성전용차량 시간대 확대를 4월 1일부터 시행한다’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이 여성 전용차량을 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동승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있다. 여성 전용차량에 남성이 승차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여성 승객과 동반하는 초등학생 이하의 남자아이
• 여성이 간호자로서 동행하는, 장애가 있는 남성
• 장애가 있는 여성의 간호자로서 동행하는 남성

조건은 동일하나 종전의 이용 시간은 지하철 시발부터 오전 9시까지와 17시부터 21시까지였으나 이번의 조치로 인해 종일 시행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평일에만 해당될 뿐 주말이나 휴일은 관계없다.






여성 전용차량 운용은 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치한의 성추행이나 소매치기 등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대책이다. 나고야는 2002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시행 결과 반응이 좋아서 확대된 것이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 여성들의 근로 인력이 늘어난 상황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여성 승객이 무척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여성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요시카와 씨의 부연 설명이다. 이번 조치는 우리보다 더 가부장적인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꽤나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이 제도를 시민들이 찬성했을까? 나는 요시카와 씨에게 이에 대한 데이터 제시를 부탁했다. 그가 제시한 데이터에 따르면 남녀 모두 여성 전용차량 운영 제도를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조사 결과가 전혀 달라서 놀랐다. 먼저 여성의 경우는 50%가 적극 찬성, 30%가 긍정적 찬성, 10%가 무반응, 10%가 반대로 나왔다. 남성의 경우도 적극 찬성이 30%에 그쳤으나 50%가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는 여성과 비슷한 찬성률이었다.

남성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그리 심각하지 않다.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여성 전용차량이 정차하기 때문에 머뭇거리다가 지하철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란다. 또한 칸을 이동할 때 정차 후 차량 밖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단다. 연인과 같이 지하철을 탈 때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것도 반대 이유에 들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여성이 남자와 같이 일반 차량에 승차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요시카와 다카토시 계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현장 취재를 하기로 했다. 취재에는 홍보 담당 도모사카 씨가 동행했다. 역내에서 함부로 사진 촬영을 하다가 말썽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이 또한 나에 대한 친절한 배려였다. 나고야 시청 청사는 지하철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취재의 목적지는 후시미(伏見) 역으로 미리정해져 있었다. 후시미 역은 내가 탄 메이조(名城)선과 히가시야마(東山)선이 만나는 곳이었다. 도모사카 씨는 역 사무실에 가서 취재를 위한 완장을 차고 왔다. 짙은 보라색 완장이었다.

후시미 역의 구내 기둥과 벽에는 ‘여성 전용차량 시간대 확대’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바닥에도 ‘여성 전용차량을 알리는 표지와 4월 1일부터 종일 시행한다’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여성 전용차량 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취재 시각은 출근 시간이 아닌 오전 11시였다. 여성들이 여성전용차량 라인에 한 명, 두 명 줄을 서기 시작했다. 지하철이 다가올 시점에 여성들의 줄이 보다 길어졌다. 아뿔싸! 이때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여성들 사이에 줄을 섰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정장 차림의 신사는 여성 전용차랑 라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나는 도모사카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경우 감시자가 줄을 서지 못하게 하는 등 특별한 제재가 있습니까?”
“제재는 없습니다. 자율적인 시민 의식에 맡기는 것이지요. 홍보 수단을 높이는 것밖에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현행의 여성 전용차량에 철도영업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남성 손님의 이해와 협력 아래 철도 사업자가 수송서비스의 일환으로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승차를 금하는 법적 근거도 없고, 남성 손님을 배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용자의 이해와 협력이 법보다 더 중요하다.

그 순간 나이가 지긋한 여성 손님 두 사람이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표정으로 봐서 “여기는 여성 전용차량 라인입니다. 4월 1일부터 종일토록 시행되었습니다”일 듯싶었다. 아니라 다를까. 남성의 얼굴이 붉어짐과 동시에 굽실거리면서 ‘걸음아! 날 살려라!’ 옆 라인으로 급히 이동했다. 시간대가 11시라서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심코 줄을 섰던 모양이다. 순간 지하철이 빵! 긴 호흡을 하면서 역 내로 들어왔다. 이때 역 내에서 방송이 나왔다.

“4월 1일부터 종일토록 여성 전용차량을 운영하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성 전용차량에서 내리고 타는 승객은 모두 여성이었다. 내리고 타면서 서로 몸을 부딪쳐도 거부감이 없는 표정이었다. 엄청나게 붐비는 시간대는 아니었으나 여성이 제법 많았다. 나는 다시 반대편으로 가서 여성 승객들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60대·40대·10대의 여성 가족이 여성 전용차량 라인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제도의 시행에 대해서 묻자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너무나 좋은 제도이며, 이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지인인 사토 마사코 씨도 여성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저희 세대에서는 여성이 가정주부 외에 직업을 가지지 않았었으나 요즘 대부분의 여성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출퇴근 시간은 물론 낮 시간에도 업무상 이동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을 배려하는 측면에서 대단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수년 전에 일부 구간에서 부분적으로 시행을 하다가 실효성이 없어서 중단되었다. 이 시점에서 차량이 붐비는 노선을 중심으로 여성 전용차량을 운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지하철 내에서의 신체 접촉, 신체 촬영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범죄로 다뤄지고 있다. 사람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대에 벌어진 일이다. 이 제도가 역성차별로 비춰질 수 있으나 오히려 남성 보호 차원에서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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