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10. 2018

04. 부모로서 나는 어떠한가?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가정 폭력과 학대가 날로 늘어가는 탓이다. ‘2016년에 일어난 노인 학대 4,280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5%가 아들과 딸에 의해서 벌어졌다’는 통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존속 범죄를 생각하니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가정 폭력과 학대는 대부분 가족 간의 대화 부족이 원인이다. 한 어린이재단에서 조사한 ‘가족 간의 대화가 하루 평균 13분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결과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족과의 대화, 얼마나 중요한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직·간접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성장이 바른 방향으로만 이뤄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아버지의 지나친 영향으로 판을 그르칠 때가 적지 않은 탓이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그 자식의 장래도 먹구름 속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임상 심리학자이자 라이프 코치인 스테판 폴터는 “아버지 유형은 직업·대인 관계 양상과 삶의 방법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아버지의 핵심 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 유형은 성취 지상주의형 아버지, 시한폭탄 형 아버지, 수동형 아버지, 부재형 아버지 그리고 배려하는 멘토형 아버지 등 다섯 가지가 있다.”

다섯 유형 중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 유형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배려하는 멘토형 아버지’다. 자녀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며, 이 바탕 아래 자녀의 삶에 동참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스테판 폴터가 말하듯 ‘배려하는 멘토형 아버지는 모든 아이가 바라는 희망 사항’이지만 현실은 꿈에 불과하다. 전체 아버지 중 10%에 불과하다는 서글픈 통계도 있다. 이 통계는 미국의 경우고 우리나라에 대입시키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도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테판 폴터는 “배려하는 멘토형 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목표로 삼고 성취해야 할 모델”이라면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아버지가 우리 삶에 준 영향을 파악해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통찰을 통해 해결하고 신념을 변화시키는 일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이 정체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뼈 있는 충고다.



우리 아버지들 중에는 온통 자신의 영향력을 내보이려는 ‘성취 지상주의형’이 많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어린 자식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마냥 걱정스럽다. 그래서 자식에게 용기를 주고 좋은 자리에 앉혀 주는 힘 있는 아버지가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어깨가 축 처진 아버지가 더 많다. 어깨가 축 처진 아버지들은 늘 힘 있는 아버지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분노한다. 김정현이 소설『 아버지의 눈물』에서 말한 것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개천에서 용이 나? 이미 출신에 따라 인생이 정해져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힘없는 아버지―친구의 꼬임에 빠져 IT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려다가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허황된 욕망에 눈이 뒤집혀 있었음을 깨닫고 경찰에 자수하는 아버지 김홍기―에게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과 용기와 눈물이 있었다. 기회는 언제나 있고 선택의 자유도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정직할 수 있는 용기,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 버릴 줄 아는 용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돌이켜 보면 그랬다.

“나 때문에 창피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들은 금방 잊을 거예요. 그보다도 전 아버지가 비겁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버지들은 크고 작은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특히 자식과 관계되는 일에는 한없이 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애착은 금물이다. 사회는 자기 자식만을 위한 놀이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두의 광장’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비겁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소설 속 아들의 말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가끔 아들과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다.

“아빠를 진우 형이라고 불러 봐.”
“정말?”
“그래, 형이라고 해 봐.”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진우 늙은이, 진우 노인, 진우 흰머리, 진우 할아버지, 진우 가난이, 진우 거지, 진우 대머리.”

그러면서 아들의 웃음이 그치지를 않는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단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아들 사랑해!” 하면 아들은 “나는 아빠 싫어해!” 한다. 그러면서도 둘은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늙었더라도, 가난하더라도 마음이 풍요로운 것이다.

재물은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 권리가 없듯이, 행복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릴 권리가 없다.

버나드 쇼의 말처럼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화가 나도 바로 내보이지 마라. (마지막 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