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똑같은 생각만 할까>
운전하다 길을 잃었다고 치자. 이때 당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건망증도, 피곤도 아니고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에 취한 사람은 금방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유는 없다. 무조건 그렇게 생각한다. 실수한 근본 원인을 찾거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온 길을 되짚어가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여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감에 취한 사람은 앞으로 달릴 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더 빨리 계획대로 실행해야만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왼쪽에 있어야 할 랜드마크가 왜 오른쪽에 있는 건지, 같은 다리를 왜 또다시 건너고 있는 건지 의아해하지 않는다. 틀린 길로 가장 멀리 달려가는 것이 바로 자신만만한 사람이다.
우리는 자신감을 능력과 성공의 자연스러운 부산물로 간주한다. 자신감이 있어야 만사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 무엇이든 함으로써 -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감이 질문을 가로막는다면, 그때는 자신감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슬로 옭아맨다.
자신감을 동원하는 것의 문제는, 자신감이 반드시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잠재적 해결책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 농구 감독들은 매일 밤 거들먹거리며 경기장으로 들어가지만,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지 않는 비생산적인 골칫거리가 되기에 십상이고, 누구든 자신만만하게 회사를 세우고 거대한 꿈을 꾸지만, 자신감이 지나치면 회사의 유일한 결과물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알아보지 못하기 쉽다.
어떤 결정을 돌이킬 수 없을 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결정의 정당성을 38%나 더 확신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현실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자신감을 지어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는 건 멀쩡한 눈에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실제와 다르게 보이고, 아무것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친구 한 명을 떠올려보라. 그 친구라면 『뉴요커(The New Yorker)』와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중 어떤 잡지를 구독할까? 당신은 그 예상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는가? 돈을 건다면 얼마나 걸 것인가? 심리학자들이 이런 질문을 한 다음, 실험 참가자들의 친구들이 실제로 선택한 잡지를 확인했더니 틀린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다. 참가자의 97%가 자기가 옳다는 점을 지나치게 확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돈을 걸었다면 참가자들 대부분은 돈을 날렸을 것이다.
지금 당장, 결과를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다섯 가지 예측을 해보라. 내용은 무엇이든 좋다. 오늘 밤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까? 내일 비가 올까? 뭐든 상관없다. 그런 뒤 예상한 것 중 한두 가지 또는 다섯 가지 전부가 왜 틀렸는지 이유를 찾아보라. 스스로 틀린 이유를 설명할 때는 옳은 척할 필요가 없다는 것, 모든 결과가 임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측에 남달리 뛰어난 이들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맞출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은 자기가 모를 때는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미 관점의 각도를 정해 버린 상태라면 다르게 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마구 흔들어라. 문자 그대로 몸을 흔들라는 뜻이다.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팔을 크게 휘두르면서 유연하게 움직이라고 하고, 다른 참가들에는 작고 정확하게 움직이라고 한 실험이 있었다. 그런 다음 신문지 활용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라는 등의 창의력 검사를 했더니, 유연하게 움직인 집단의 창의력이 24% 더 높았다. 우리의 몸은 사고과정을 유형적으로 반영한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경직된 몸은 낡은 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