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콘서트>
고래회충의 감염 증상
사람이 사람 회충에 감염되면 알아채기가 어렵다. 사람은 사람회충의 종숙주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고래도 고래회충에 감염돼도 별 탈 없이 헤엄치고 다니며 잘 산다. 그런데 사람이 고래회충의 유충을 삼키면 어떻게 될까? 식도를 따라 위에 들어간 유충은 ‘여기가 아닌데’라는 의문에 봉착한다. 원래 가기로 했던 고래 배 속과는 환경이 많이 다르니 말이다. “앗, 따가워!” 무서운 일은 그게 다가 아니다. 안 그래도 길을 잃어 당황스러운데 사람의 위에서는 위산이 분비된다. 이런 젠장,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 안 되겠다고 생각한 유충은 바닥에다 머리를 박고 숨으려고 한다. 사람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으로, 생선회를 먹은 지 몇 시간 후에 배가 무지하게 아프다면 고래회충을 의심해 봐야 한다.
고래회충
고래회충이 의심될 때 병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시경이다. 위내시경을 보면 위벽에 머리를 박은 하얀 벌레가 보인다. 뉴스에선 이걸 ‘위벽을 뚫는다’고 표현했지만, 지나친 과장이다. 위벽을 뚫는 것과 머리를 살짝 묻는 건 엄연히 다르며, 실제로 위벽을 뚫고 복강으로 나간 고래회충은 아직까지 없다. 구덩이를 파려고 삽질을 하면서 “나 지금 지구를 뚫는 중이야!”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고래회충에 감염되면 약도 없다”는 말은 진짜일까? 약이 아예 안 듣는 건 아니겠지만, 원래 기생충의 유충은 성충보다 약에 대한 반응이 좀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약을 왕창 주면 제 아무리 고래회충 유충이라도 타격은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보단 그냥 내시경으로 끄집어내는 편이 훨씬 더 신속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약도 없다’는 말보다 “내시경으로 쉽게 치료된다”라는 게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다. 복통 이외에도 고래회충의 유충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길 수 있는데, 원래 알레르기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별 일이 없지만 간혹 피부에 발진이나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가려움증이 동반될 수 있다.
뉴스의 진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를 좋아한다. 많은 이들이 생선회에 소주를 곁들이며 하루의 시름을 잊는다. 그중 고래회충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0.001%), 행여 걸린다 해도 내시경으로 금방치료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말한 뉴스는 국민 건강에 유익했을까? 회가 주는 기쁨과 고래회충에 걸릴 위험도를 분석해 보면, 그리고 횟집 사장님들의 속이 까맣게 탔을 걸 생각하면 손해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그래도 고래회충이 유독 증가했다면 보도하는 게 기자의 사명이리라.
생선 안에 있던 고래회충
그래서 다음을 따져 봐야 한다. 망상어에서 나온 건 정말 고래회충이 맞을까. 고래회충 유충은 흰색이고 길이가 기껏해야 1~2센티인 반면, 화면에 잡힌 벌레는 붉은색에 길이가 5센티나 됐다. 고래회충 중에서 유독 큰 것이었을까? ‘입질의 추억’이란 블로그 주인께서 이 점을 가장 먼저 밝혀 주셨는데, 그 기생충은 고래회충의 유충이 아니라 망상어를 종숙주로 삼는 필로메트라(Philometra)라는 기생충이었다. 유충과 달리 성충은 인체에 감염력이 없어, 우리가 먹어도 삼겹살 한 점 먹은 것처럼 단백질의 좋은 공급원이 될지언정 해롭진 않다. 아니, 그렇다면 기사가 오보란 말인가? 그랬다. 기자는 고래회충도 아닌 것을 가지고 뉴스에 내보냈고, 횟집에 큰 피해를 끼쳤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신선한 회는 괜찮다”는 기사를 내보낸 건 혹시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기자가 먼저 기생충학자 중 누구한테라도 자문을 좀 구했다면 그게 고래회충이 아니란 걸 알았을 텐데, 좀 아쉽긴 하다. 물론 기자는 신이 아니며, 오보를 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오보라는 걸 알고 난 뒤의 처신일 터.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면 그게 잘못된 보도임을 인정한 뒤 “생선회드셔도 안전합니다.”라고 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