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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6. 2018

07.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평온의 기술>



“사람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데 그건 그렇게 하는 것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회장을 지낸 잭 웰치(Jack Welch)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인 『위대한 승리』의 한 장을 할애할 정도로 기업 경영 분야에서는 ‘솔직의 전도사’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직원이 솔직해져야 회사 내 소통이 원활해지고, 소통 비용이 줄고, 신속한 사업 활동이 가능해진다고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웰치의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기보다는 “먹고 싶은 요리는 뭐든지 다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솔직하게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주문할 수 있는 부하 직원이 얼마나 될까? 그래 놓고선 부하 직원들에게 “솔직하지 않아서 문제다”고 면박까지 준다면? 웰치의 솔직 강조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 앞에서 부하 직원들로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을 가리켜 ‘더블 바인드(double bind)’라고 한다. 우리말로 ‘이중구속’이라고 하는데, 한 사람이 둘 이상의 모순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그 모순에 대해 응답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누군가가 “아무도 화나게 하지 말고 감정을 상하게 하지도 마라. 그러면서도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아라”라고 말한다면, 이게 바로 이중구속을 유발하는 언어다.

웰치가 말한 솔직은 우리의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솔직과 다르긴 하지만, 사람들이 솔직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선 웰치의 말이 맞다. 이중구속과 무관한 상황에서도 솔직하지 않은 것이 솔직보다 쉽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묘하다. 솔직을 빙자한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솔직한 게 좋을 것 같은데도 한사코 솔직을 멀리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솔직의 미덕을 찬양하는 수전 캠벨(Susan Campbell)은 솔직하게 살 때 구현할 수 있는 첫 번째 가치로 평온을 꼽는다. 평온함은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또는 감정의 동요를 근거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솔직이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살아가기’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고 지치게 만드는 자기기만이라는 독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 당신의 생각과 이상에 순응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고 표현한다면 현재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더 큰 능력이 생긴다.”

이 정도면 무난한 주장이지만, 솔직을 예찬하는 책들을 보면 솔직히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권력관계와 그에 따른 뒷감당의 문제를 자세히 거론하지도 않은 채 솔직의 장점만을 역설하면 어쩌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솔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솔직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나 결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무턱대고 모든 사람을 향해 솔직하라고 부추기면 어쩌자는 건가?

우리는 사람을 비교적 솔직하다거나 솔직하지 않다는 식으로 구분하지만, 무엇에 대해 솔직한 것인지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적(性的) 문제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지만, 자신의 다른 문제에 대해선 전혀 솔직하지 않다. 이와는 정반대 유형의 사람도 있다. 이렇듯 무엇에 대해 솔직한가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솔직과 관련해 자주 제기되는 문제는 약점의 공개에 관한 것이다. 그 누구건 자신의 약점에 대해 솔직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마다 정도 차이가 크다.

키스 페라지(Keith Ferrazzi)는 “나는 약점을 공유하는 것이 그 약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공개하라고 권한다.

“그 보상은 정말 엄청나다. 믿어도 좋다!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는 순간, 외로움은 멀리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말로 당신을 돕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집단에선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점의 공개와 관련해 꼭 따라붙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믿는 구석’이다. 즉, 자신의 약점 공개는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자신의 강점이 있을 때, 즉 믿는 구석이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게 없는 사람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기계발서들엔 자신의 약점을 자기 비하성 유머의 소재로 삼는 법들도 추천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믿는 구석’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 역시 이걸 깨닫는 데에 수십 년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비교적 내 약점을 솔직하게 잘 공개하는 편이어서 자신의 약점을 한사코 감추려는 사람들을 딱하게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나의 그런 생각이 자만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믿는 구석’을 만들려는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건 바로 자신의 강점을 열심히 키우고 최대한 활용하면서 약점은 그렇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관리하는 것이다. 이건 마커스 버킹엄(Marcus Buckingham)과 도널드 클리프턴(Donald O. Clifton)의 아이디어인데, 이들은 “많은 사람들은 약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강점에 대한 자신감을 뒤로 숨기고 있다”며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은 잊지 마라”고 말한다. 즉, 자신이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잘하라는 이야기다.

자신에겐 키우고 활용할 만한 강점이나 잘하는 게 없다고 버티면 하는 수 없긴 하지만, 문제는 약점은 감추려고 애쓴다 해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알고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계속 약점을 감추려는 시도를 계속 밀고 나가는 게 좋을까? 그렇게 하겠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까운 사람에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도 공개하지 않겠다면 하는 수 없지만, 적어도 공개에 겁을 먹을 정도로 감추기 위해 애쓰진 않는 게 좋다. 그렇게 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거니와 상호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대표적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다. 윈프리가 철저하게 개인 중심적인 자기계발을 역설하는 것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있다. 윈프리는 자신의 약점에 신경 쓰는 세상을 이렇게 비웃었다.

흑인이었다.
사생아였다.
가난했다.
뚱뚱했다.
미혼모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가 정답이다. 물론 윈프리에겐 말을 잘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자신에겐 그런 게 없다고 하더라도 속마음으로나마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를 외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윈프리처럼 정면 돌파를 하거나 자신의 약점을 자기 비하성 유머의 소재로까지 삼는 경지는 넘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걸 감추려고 불안해하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감추고 싶은 약점이 공개된다면 평온이 깨지겠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다. 반면 자신의 약점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함으로써 평온이 훼손당하는 것은 내내 지속된다. 어떤 게 나은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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