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위한 엔딩노트>
나이가 들면 예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이 문득 마음에 걸리게 됩니다.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몸이 쇠약해져서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한다면 엔딩 노트, 편지, 메모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메시지가 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가족에게 부탁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인은 어느 날 갑자기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제자는 수화기 너머에서 “30년도 더 된 일입니다만, 그날 회식 자리에서 문득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격려의 말씀이 떠올라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정작 지인은 30여 년 전에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제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제자는 지인의 말이 마치 하늘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는 것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할 수도 있겠지만,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직접 만나는 편이 좋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기분 좋은 우연이 겹치기도 합니다. 서로 궁금해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파동이 포개지며 공명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불교가 전해지기 전 일본의 종교에는 ‘나카이마(中今)’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간의 영원한 흐름 속에 중심점으로 존재하는 지금’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영혼이 약동하고 생명이 불타오르는 시간’이며, ‘지금까지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꿈꾸던 미래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필사적으로 일하던 순간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더 나은 미래’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가 처음부터 잘못되었기에 현재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한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금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스스로 차단해버린 상태입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면 과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도 지금의 삶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을 즐길 줄 안다면 과거를 향해 쌓아놓은 마음의 벽을 스스로 허물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마음껏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지금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지금을 열심히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