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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9. 2018

07. 손 떼고 눈 감고 운전하기

<말기술>



회사를 망하게 하는 말,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한다”

손 떼고 눈 감고 운전하기

습관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관성이 늘 나쁜 것도 아니다. 자동화와 표준화가 실행 비용을 낮추는 것과 똑같이, 습관은 능동적 사고를 요하는 문제에 쏟아야 할 정신 에너지를 옷 개기나 이 닦기 같은 틀에 박힌 일과에 소모하지 않게 해준다. 

하루하루가 의식적인 목적이 아니라 습관과 일과로 채워질 때, 우리는 “골 난 대로 따라간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그 기원은 나무바퀴가 달린 마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가 오면 흙길이 진흙탕이 되고, 마차가 길을 지나가면 흙이 깊게 패인다. 길이 마른 뒤엔 바퀴가 만든 골이 드러난다. 그러면 마차가 그 골을 따라 길 한가운데로만 다닐 수 있었다. 

그러니 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찰을 줄여주고 더 쉽게 목적지에 이르게 해주었다. 단, 아주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골이 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 비유는 현대세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차를 몰다보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타력만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눈까지 감는다면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결국 이상한 곳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습관과 일과에 의존하듯 업무에서는 절차와 관례를 따른다. 하던 대로 하는 방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운전대를 놓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듯이 삶과 일에서도 표류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어떤 행동을 취했으나 목표를 효율적으로 실현하지 못했다면, 때로는 그 행동이 도리어 목표를 방해했다면, 우리는 거기에 쓴 시간과 돈과 놓쳐버린 기회만큼 손해를 본 셈이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한다”라는 비싼 문장의 가장 분명한 비용은 돈과 시간과 기회다.



    
돈 낭비

당신 주변에 세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일 중’이라는 말이 얼마나 비싼지 알 것이다. 원래 사려고 생각했던 물건을 싸게 사는 경우라면 그건 분명 절약이고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생각 없이 물건을 산다. ‘40퍼센트 가격 인하’라든가 ‘원플러스원’ 행사를 지나치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꺼낸다. 그 물건이 장보기 목록에 없는데도 말이다. “가격이 너무 괜찮아서 안 살 수 없었다”라는 말을 몇 번 하고 나면 사놓고 잘 입지도 않는 옷들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목적 없는 무의미한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한다”라는 말도 그와 똑같지 않을까? 

내게 필요 없는, 혹은 별로 갖고 싶지도 않은 뭔가를 산 뒤 돈을 절약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돈을 아끼기는커녕 돈을 썼다. 나의 필요나 목적과 전혀 관계없는 상품을 샀다면 나는 돈을 버린 것이다. 
  

시간 낭비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팀이 돈을 쓰는 구매에는 꽤 신중하다. 이를테면, 당신의 회사가 100만 원짜리 장비나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구매하려고 한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100만 원이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CEO가 “이 지출 건은 뭔가요? 우리에게 이 장비가 왜 필요하죠”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구매 담당자는 준비해둔 타당한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즉, 그만한 돈을 그 물건에 투자하는 데는 말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쓰는 데는 돈을 쓰는 데만큼 신중하지가 않다. 

100만 원짜리 물품을 살 때는 어떻게든 충분한 근거를 찾아내는 반면, 수백만 원에 해당하는 우리 자신의 시간을 쓸 때는 그 가치에 걸맞은 검토 과정을 쉽게 생략한다. 

대부분의 사업체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예산을 짜면서, 우선순위 가 높은 순서대로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에 자금을 배정한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하루하루와 한 주 한 주의 시간에 대해서도 예산을 편성하듯 계획을 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간은 돈에 비해 훨씬 더 수동적으로 쓰인다. 즉,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우리가 목표에 맞추어 시간을 능동적으로 조직하지 않고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한다”라는 태도로 일할 때는 습관과 일과만으로도 하루가 쉽게 채워진다. 
  

혁신 실패 

혁신의 반대 개념은 ‘이제까지 하던 대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례에 의존하는 사람은 능률을 개선하거나 퀄리티를 높일 기회를 보고도 무시한다. 

혁신이 꼭 절약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또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꼭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GPS 안내보다 실물 지도를 선호할 수 있다.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고 그 과정을 즐긴다면 그에게 현대 문물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긴 어렵다. 때로는 한 부문의 구성원 전체가 혁신에 저항하기도 한다. 한 예로, 변호사들은 다른 분야보다 훨씬 늦게 워드프로세서와 이메일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간당 요금을 받는 직업이기 때문이었을지도?) 하지만 업계 전반이 더디게 변화했기에 어느 한 사람이 구식 소통법을 고수한다고 해서 대단한 불이익을 받진 않았다. 

이와 달리,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새로운 도구를 뒤늦게 채택하는 것이 상당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 레스토랑은 특별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효과적으로 알리지 못한다. 새로운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지 않는 제조업체는 인건비를 절약하여 더 싼값에 상품을 생산하는 경쟁자에 뒤처진다. 룰이 바뀐 뒤에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 스포츠 팀은 새로운 룰을 활용하는 경쟁자들에게 패배한다. 
  

내가 이 일을 왜 하지?

생각 없는 관성으로 인한 가장 막대한 손실은 팀 퍼포먼스에서 발생한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직원 몰입도’ 개념은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심도 있게 연구되어왔다.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믿는 직원이 일을 더 잘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명백한 듯한데, 몰입도와 수익성의 높은 상관관계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도 사실로 입증되었다.

대니얼 핑크는 『드라이브(Drive)』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동기는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목적의식에서 나온다.” 당신 팀의 어느 한 사람이 어떤 한 업무라도 그저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기여가 왜 중요한지 모르는 것이다. 

최대의 능률은 모든 팀원이 업무의 목적과 가치를 이해할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 직업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한다”라는 비싼 문장을 해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이 일을 왜 하지”라고 묻고 대답하는 것이다. <말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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