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불황은 없다>
2012년, 백화점 판매사원이 된 뒤 10년쯤 지난 무렵, 지독한 우울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의 어깨는 무겁다. 파산 이후 남편은 이상하게도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신혼 초에는 총명한 남자였는데 하는 일마다 장벽을 만나 무릎을 꿇더니 의기소침해지고 패기를 잃어 갔다. 그렇다고 사람을 잘 믿고 오지랖이 넓은 남편을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의 귀가 얇고 사업 머리가 없는데다 융통성도 없다는 것을 탓해서 무엇 할까 싶었다. 나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밖으로 떠도는 남편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업주부만 있는 줄 알아요? 전업남편도 있다는데 당신이 아이들 좀 키워요.”
우리나라의 경제 제도는 한 번 파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시 재기하는데 무척이나 까다롭다. 한마디로 패자부활전이 없다. 나는 남편의 재기를 기다렸으나 온갖 규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편의 재기는 요원했다. 결국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아파서는 안 되고, 쓰러져도 괜찮은 척을 했다. 나는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나는 밤낮으로 일에 빠져 살면서 이따금 ‘내 인생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다 특히 늦은 퇴근길에는 더 회의감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로지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 온 탓에 어느새 나라는 사람은 내 인생에서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일 뿐이다. 전현미는 없었다. 그것이 다였다.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슬픔과 우울함, 외로움, 그리고 고통이 찾아 왔다. 그것은 전에 같으면 정말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나를 위한 삶?’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나로 산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일류 백화점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도 거기에 나는 없었다. 너무 열심히 살아온 탓에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온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그냥 닥치는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 구체적으로 나를 돌보며 살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와 보니 ‘칭찬병’에 걸려서 나는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라는, 결핍에서 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 놓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현미야, 남자들이 중심이 된 신사복 매장에서 너처럼 꿋꿋하게 버텨온 여자가 어디 있어.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럴 거야. 힘내. 너는 어떤 여자보다도 잘 살고 있는 거니까.” 그녀의 말은 내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그러다가 나는 전혜린 저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었다.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이때부터였을까. 이 문구가 내게 주문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더 당당한 내가 되기를 노력했다. 최소한 나는 막연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산다는 것이 뭐라고 해도 당당한 나로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떤 난관이라도 돌파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생을 의미한다.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활기차게 사는 것은 더욱 좋다. 함께 힘차게 사는 것은 최고로 좋다.
어느 날 타 브랜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과장님이 매장으로 찾아왔다. 이전 브랜드에서 근무할 때 인사하며 안면을 익힌 사이였다.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반가운 마음에 함께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던 중 과장님께서 나에게 “우리 함께 일 한번 하시죠? 이제 세계 최고 브랜드에서 근무하셔야죠?” 하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를 쭉 지켜봐 왔다며 이직을 제안한 것이다. 백화점 사정을 빤히 알고 있는 과장님은 혼자서 안 되는 일도 있다며, ‘전현미 매니저는 우리 브랜드에 꼭 필요한 사람이니 아무리 해도 안 될 때는 브랜드를 옮겨 봐도 괜찮다고 위로를 해 주셨다. 그때 당시 매출도 저조한 상태라서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터라 내심 위로가 되었다. 결국 나는 내가 꿈꾸어 오던 S백화점 강남점 아웃도어 브랜드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다. S백화점 강남점 매니저라는 이름에서 오는 부담도 있었지만,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백화점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상황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그렇게 꺼져 가던 나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가끔 이게 맞는 일인지 고민이 될 땐 ‘나는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머릿속에 계속 주입시켰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바닥을 쳤던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그리고 S백화점에서 새 마음 새 뜻으로 근무하며 나는 원래의 나로 천천히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직원들과 고객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앞에서 잠깐이지만 축 처져 있던 나의 어깨를 다시 한 번 쫙 펴본다. 지난 힘든 시간을 떠올려 보면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하고, 기회라는 것은 처음에는 하나의 위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위기와 함께 찾아온 행운에 나는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머뭇거리지 않고 내 눈앞에 온 기회를 다시 잡았다는 사실에 나는 더욱 감사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누릴 수 있던 것들은 나는 단 한 번도 쉽게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도, 직장도,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달리 간절함 그 하나만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고비마다 내게 찾아온 행운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비록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지난날의 나를 생각하며 더욱 잘될 거라 믿고 있다.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라면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