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의 월든>
나는 오래전에 답답한 사무실에서는 더 이상 상담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혁신적인 생각을 주변에 알렸다. 이제부터 앉아서 하는 미팅은 없을 것이며 ‘어디론가 나가는’ 미팅만 있을 것이라고. 사무실 가까이 있는 작은 공원은 그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내 동료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야외공간에 적응하지 못했다. 구조적인 틀을 갖춘 사무실을 벗어나 컴퓨터가 없는 밖으로 나가면 불편해했다. ‘어디론가 나가는’ 이 미팅을 세 번 시도한 뒤 나는 그만 양보하고, 사람은 많은 일을 혼자 할 수는 있어도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같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일은 혼자 가는 것과 다른 사람과 함께 연합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느냐가 관건이다. 독창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물결을 거슬러 헤엄친다. 그러자면 때로 고단하지만 생명력을 제공하는 원천에 닿을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저 밖의 자연에서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맛보기가 필요한가? 나는 강변의 초원에서 청혼을 받았다. 우리 두 사람이 공동연구를 하기로 한 것은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시유림에서 결정한 바다. 안식년을 갖기로 한 결정은 베를린 동물원에서 내렸으며 아시시 위로 우뚝 솟은 1,290미터 높이의 몬테 수바시오에서 그 결정을 재확인했다. 삶의 활력과 자기 안내를 위한 강연을 하고 저술가와 연사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은 캐나다 쪽 트로피 산에서 세웠다. 삶을 되돌아보고 결정해야 할 때면, 언제나 우리는 호수로 산으로 바다로 나간다.
삶은 유한하므로 소중한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뒷날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 눈에 고맙게 비치는 것이나 호기심이나 모험심으로 눈을 반짝 빛나게 만드는 것을 따라 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다.
당신의 눈은 언제 빛나는가?
대학생인 우리 아들이 5개월간의 자전거 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 아이는 친구와 더불어 베이징에서 출발해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지나 이란을 거쳐 유럽까지 계속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두 아이는 수많은 도전과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직관 속에서 자신감이 생기는지, 자연에 대한 종속뿐 아니라 자연과의 유대감이 자라는지를 경험했다. 이들은 이상기후의 징조를 일찍 깨닫는 법을 새로 배웠고 표지판이 없는 구간에서도 하천의 흐름이나 산맥의 줄기에 따라 방향을 잡으며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사는 사람과 짐승, 식물에 주목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숙박할 곳을 찾을 때 자기 직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막과 산맥, 어지러운 대도시와 낯선 국가들을 지나 1만 5,000킬로미터를 달린 두 대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개인적인 한계와 능력을 정확히 알고 여유롭게 자신의 직관을 믿는다는 전제에서 말이죠.”
직관은 굳이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순례 또는 모험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기를 수 있다. 때때로 오프라인 생활을 하며 의도적으로 적막의 시간을 갖거나 이따금 혼자서 의식적으로 긴장을 풀고 창의력의 원천으로 자연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