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여행, 커피꽃으로 피다.

<여행의 이유>

by 더굿북

앤트러사이트, ‘오랑주리’ 그림으로 남다

녹색과 청색이 어우러져 노쇠한, 철문을 밀었다.

로스팅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얀빛과 푸르스름한 연기가 1차 팝 들어가기 전의 신향과 고소한 향으로 섞여 온몸을 감싸 안는다. 뻥 뚫린 내부는, 그냥 창고 안에 큰 평상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커피기구와 브레드만 놓였을 뿐이다. 그게 전부였지만 커피향, 그것만으로도 이미 꽉 찬 느낌이다. 비워져 있는 공간이 비로소 나의 마음을 채운다.

1.jpg?type=w1200 ⓒ박진옥 서울 합정동

합정동 당안리 발전소 주변 주택가 변두리에 있는 구두공장을 카페로 개조한 앤트러사이트. 낙후된 지역으로 들어가 새로운 명소로 바꾸는 미국의 에이스 호텔과도 같다.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는 노출 벽과 철, 원목, 전선을 그대로 두어, 2층에는 철거하다만 벽 그대로이다. 중앙에는 공장철문이었던 녹슨 철문테이블과 안락한 소파가 대비된다.

2.jpg?type=w1200 ⓒ박진옥 서울 합정동


큰 프로밧 로스팅기 두 대가 동시에 돌고 있다. 뿌연 연기 속의 로스터들은 시뻘건 불을 조절하기도 하고, 로스팅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호퍼를 빼서 향을 맡거나, 등불에 색을 비춰보기도 한다. 생두가 250도의 열을 견뎌내야 비로소 원두가 된다. 그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 그림 속 주인공들이다. 특히 공장에서 사용하는 컨베이어벨트가 그대로 놓여 있고, 그 위를 테이블 삼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상상 그 이상이다. 모네가 그린 ‘수련연못’이 끝없이 펼쳐진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 속 감상자가 된 기분이다. 모네가 죽기 직전에야 완성했다는 이 작품은 수련연못이 끝없이 펼쳐져서 미술관 전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감상자도 작품 속 작품이 되게 했다. 수련연못 속에서 번지는 모네의 수련꽃 향이 커피 속에 진하게 녹아 있다.

커피 ‘나쓰메 소세키’를 마신다. 근현대 일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일본의 국민작가다. 작품 《풀베개》, 《그 후》를 읽은 적이 있다. 블렌딩명에서 커피는 뉘앙스의 표현임을 느낀다. 중남미 커피의 좋은 바디와 질감이 에티오피아의 밝은 향미와 어우러져 있으며, 부드럽고 밝은 산미가 살아나고 있다(Good Acidity, Bright Fruit, Clean and Sweet Finish).



모모스 커피, 모두가 모여서 스위트한 밸런스

해운대 밤바다. 검은 하늘과 검은 바다는 파도 소리로 둘을 구분할 수 있다. 어쩌면 구분하지 않아도 그대로 아름답다. 밤엔 보이지 않지만, 아침이 되면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나 또한 커피테마 여행 목적으로 떠나왔지만, 새롭게 채우기 위해 버릴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떠나온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비우고, 채우고 있다. 떠나온 것만으로 아름답다.

부산 동래 온천장 모모스카페. 모모스는 외국 커피농장에서 직접 원두를 사오는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한다. 그린 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스페셜티를 함께 만드는 과정이 아름답다. 아프리카 농장에서 붉은 커피체리를 태양 아래 말리는 여인들과 해맑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의 미소 앞에 모모스의 의미가 쓰여 있다. 모모스란 모두 모여 스위트(sweet)한 카페. 얼굴이 까만 아이들의 유난히 맑은 눈빛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하얀 이가 드러난 미소 속에서 스위트함이 넘쳐난다. 사람들과의 바디감, 밸런스(balance), 풍미가 폭포수처럼 터진다.

오늘은 화요일이라 와요커핑이 시작되었다.

꾹스님과 콩스님이 주재하는 커핑은 주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여러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쓰읍, 쓰쓰읍……’ ‘후루룩, 흡……’ 각각의 사투리와 어울릴 만한 소리를 내며 커피를 들이키고, 뱉고, 커핑 노트에 기록을 하고 점수를 매기고 분주하다.

“엘살바도르 coe #10 엘 호코티요. 지역은 산티아나, 가공방식은 워시드, 농장은 엘 호코티요, 품종은 버번, 향미는 아몬드, 밤고구마, 캐러멜, 허브, 크리미, 굿 마우스 필입니다.”

“에티오피아 구지 존 아크라비 커피. 농장은 아크라비, 품종은 에티오피아, 가공방식은 워시드, 향미는 플로랄, 레몬, 라임, 아카시아, 허브티, 설탕시럽, 후미는 클린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이제 낯설지 않다. 나도 한 모금 머금고 커피의 풍미를 느낀다. 처음엔 커피 향을 쫓아 시작된 여행이지만, 이제는 사람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커피벨트의 커피나무를 키우는 사람들과, 외국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커피산지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사람의 향기를, 커피의 하얀 꽃처럼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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