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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30. 2018

04. 이상한 아이다.

<개와 하모니카>




이상한 아이다.

엄마 손을 잡고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서 있으면서 가온은 옆줄의 남자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남자아이가 실제로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건 가온도 알고 있었다. 나이는 아마 자신과 같거나 한 살 정도(가온은 일곱 살이다) 많아 보인다. 바스락거리는 소재의 파란색 스포츠코트를 입고 마리너스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 그게 마리너스 모자인 줄 알았는가 하면 가온도 어제 —아니, 그저께라고 해야 하나, 비행기 안에서 잤으니까? 아무튼 돌아오기 전날 오후에 —그 구단의 기념품 가게에 따라갔다가 하마터면 그 모자를 살 뻔했기 때문이다. 가온은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가온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야구 모자를 쓴 아이들이 몇 명 있지만 모두 남자아이였기 때문이다. “잘 어울리는데”라고 엄마는 말했다. “멋있잖아, 이치로하고 커플이야”라고.

옆줄에 서 있는 남자아이에게 만약 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애 가족이 하나같이 커다란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것과 하나같이 짐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었다. 남자아이를 제외한 모두가 —엄마와 둘이서만 여행하는 가온과는 달리 그 아이네는 대가족이 다 함께 여행에 나선 것 같았다. 부모와 조부모, 게다가 친척인 듯한 키 큰 남자까지 다 같이 —가방 외에 종이백이며 비닐봉지, 끈으로 묶은 상자 같은 걸 들고 있었다(심지어 키 큰 남자는 그 밖에도 테니스라켓 두 개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남자아이 탓은 아니라고 가온은 생각했다. 어린아이는 가족을 선택할 수 없으니까. 이상한 애다, 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건 이를테면 가온의 버릇이었다. “관심 있구나?” 언젠가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아마 자기랑 같아 보이나 봐.” 엄마가 아빠에게 그렇게 말
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가온의 ‘느낌’을 말하자면 오히려 반대였다. 다르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와는 다르구나, 하고. 분명 어른들 눈에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라는 것만으로 같은 종류의 생물로 보이리라는 건 가온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온에게 —어른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어른들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라고 가온은 생각하는데 —세상에는 어른이 너무 많다. 온통 어른투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 많은 어른들을 전부 숫자에 넣었다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줄 선 사람들이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아빠, 나왔을까?”

가온은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가 차로 데리러 오기로 한 것이다. 햄과 함께. 햄은 가온이 좋아하는 돼지 인형으로, 실은 미국에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너무 크다는 이유로 데려가지 못했다. 아무튼 햄은 가온보다 크다. 등신대 인형인데, 등신대라는 건 진짜와 크기가 똑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햄을 샀던 날에 설명 들었다. “하지만 누구랑 똑같은 크기야?” 돼지에도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을 거란 생각에 가온은 그렇게 물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빠도 엄마도 알지 못했다.

“나오긴 했을 텐데.”

엄마가 대답했다.
“비행기가 예정보다 빨리 도착해서 어쩌면 우리가 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라고.


우리 앞에 이제 두 사람 남았네, 하는 참에 새로운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가온은 뒤돌아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잇달아 들려오는 발소리, 조금이라도 짧은 줄에 붙으려고 뿔뿔이 흩어져서 줄을 서는 사람들.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새하얀 머리에 보라색이 군데군데 보이는 자그마한 할머니다. 어른들은 대개 가온과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거나 아니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두 가지 다 하지 않고, 옆줄 —그 남자아이와 같은 줄이다. 한참 뒤쪽이지만 —에 와서 선 뒤에도 가온에게 시선을 딱 고정하고 있었다. 가온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금세 순서가 되어서 담당자가 있는 부스로 들어가야 했는데 뒤를 돌아보자 할머니가 아직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싫은 느낌도 으스스한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상했다. 저런 식으로 남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건 어린아이들만 하는 거 아닌가. 나처럼 작고 나이 어린아이들에게만 허락되는 행위일 텐데.

“왜 그래? 가야지.”

목소리와 동시에 엄마 손이 가온의 머리 위에 놓였다. 가온은 다시 앞을 바라보고 부스 옆의 통로를 지나갔다. 그러자 그곳은 건물 2층이었는데 투명한 펜스 너머로 1층이 내려다보이고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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