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위한 엔딩노트>
사람들은 ‘영혼의 유대감’이라는 의미로 ‘끈’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 ‘끈’은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치 인터넷 네트워크처럼 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빈틈없이 뻗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마음과 영혼으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오래전부터 ‘끈’이라고 표현해온 것입니다. 이런 ‘끈’의 대표적인 예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와 같은 가족입니다.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한 둘도 없는 친구도 강한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다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가끔 생깁니다. 아이에게 수혈하기 위해 혈액형을 검사했더니 부모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라고 밝혀지는 식입니다. 지금까지 당연히 자기 자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모는 처음에는 혼란에 빠지고, 의료진으로서는 그 혼란을 진정시키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에 부모는 “비록 혈연관계는 없을지라도, 그래도 제 자식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과연 위대한 존재구나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이처럼 ‘끈’은 혈연관계가 없는 타인과의 사이도 이어줍니다. 반대로 혈연관계가 있는 가족끼리조차도 죽을 때까지 ‘끈’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끈’은 혈연관계와 아무 상관 없어 보입니다.
‘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주변 사이의 ‘끈’을 다시금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내세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끈’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다는 상실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실감은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세월’보다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약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잃으면 ‘감정정리’를 하려는 본능이 발동됩니다. 그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단념을 스스로 해냅니다. 단념은 서서히 추억이라는 감정으로 승화되고, 더 나아가 내일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생체 에너지로 바뀝니다.
고인을 가끔 떠올려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고인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현세에서 눈물을 흘리면 내세의 영혼도 슬퍼질 테니까요. 현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세의 영혼에 전달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어머니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행복하면 어머니도 기쁘시죠? 제가 그쪽에 가게 되는 날,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