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피부를 기어다니는 기생충이 있다?

<기생충 콘서트>

by 더굿북

2001년 겨울, 미얀마의 양곤에 사는 한국인 60명이 한국 식당에서 생선회를 먹었다. 회를 먹은 것까진 좋았지만, 그중 63퍼센트에 달하는 38명이 무서운 증상을 보였다. 벌레가 지나갈 때처럼 피부가 선 모양으로 붉게 부풀었는데, 더 무서운 것은 그 선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흔히 침범된 부위는 등이고, 그 다음이 배였다. 그 밖에 옆구리, 가슴, 목, 팔, 다리 등에 나타난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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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피부에 나타난 유극악구충의 흔적

침범된 부위의 증상은 때론 아프고 때로는 가려운 것이었지만, 그보다 피부에 뭔가가 기어 다니고 있다는 데 대한 공포감이 훨씬 더 컸다. 심지어 증상이 없는 22명도 그 광경을 보면서 공포에 질렸고, 그중 몇몇은 신경과민과 불면증 등을 호소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뭘까. 혹시 기생충이 아닐까 싶어 그중 두 명에게서 피부의 붉은 부분을 떼어 내 현미경으로 관찰했지만, 기생충은 보이지 않았다. 현미경에서 관찰된 것은 염증과 더불어 벌레가 지나간 흔적으로 추측되는 피부 내 터널이었다. 환자들의 피를 검사한 뒤에야 진단이 나왔다. 이 환자들은 모두 유극악구충(Gnathostoma spinigerum)에 대한 항체가 높아져 있었다.

9-2.png?type=w1200 유극악구충의 제3기 유충. A : 유충 전체, B와 C : 머리 부위와 두극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본 모습




유극악구충증의 증상

사람은 유극악구충의 종숙주가 아니다. 즉 유극악구충은 사람에게 들어오면 그냥 유충 상태로 머문다. ‘길을 잃은 유충의 위험한 질주’, 유극악구충이 인체에서 치명적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가장 흔한 증상은 미얀마 교민들처럼 피부가 선 모양으로 부푸는 것으로, 회를 먹고 난 뒤 1~4주 후에 일어난다. 보기에 징그러워서 그렇지 사실 이게 낫다. 드물긴 하지만 유극악구충이 뇌를 침범해 뇌염이나 뇌출혈 등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통계에 의하면 전체의 7퍼센트 정도가 뇌를 침범했다니 결코 적은 비율은 아니다. 뇌뿐이 아니다. 다음을 보자.

15세 소년이 2주 전부터 오른쪽 눈이 침침해서 병원에 왔다. 이 소년은 8개월 전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멧돼지육회와 바닷가재를 먹었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눈이 침침한데 2주간을 병원에 안 가고 참았다는 점이다. 눈이 침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망막박리 같은 경우엔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시력 회복이 어렵다. 되도록 빨리 병원에 가자. 다시 그 소년 얘기로 돌아가서, 병원에선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오른쪽 눈의 망막 부근에 벌레가 기어간 것처럼 선이 쭉 그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여러 정황상 기생충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의사는 알벤다졸, 즉 회충약을 고용량으로 소년에게 투여했는데, 이 처방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소년의 시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눈 검사를 한 결과 시력은 정상인데 기어간 흔적은 여전했다. 병원 측은 웨스턴 블롯(western blot)이라는, 좀 더 정교한 방법으로 진단을 시도했고, 결국 그 선이 유극악구충이 기어간 흔적이라는 걸 밝혀낸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가 고용량의 회충약을 준 게 소년의 눈을 구했으니, 가히 명의라고 할 만하다. 참고로 눈으로 간 사례는 2013년까지 26례 발견됐고, 그중엔 유극악구충을 직접 꺼낸 경우도 있다. 그 밖에 가슴, 성기 등 다른 곳으로 간 경우도 보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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