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는 도박벽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두 번째 아내인 안나의 회상에 의하면, 그는 도박장에 틀어박혀 집에 가지 않았고, 끝내 아내의 결혼반지까지 전당포에 잡혔다. 또 하루는 아내를 남겨둔 채로 돈을 벌어온다며 독일의 휴양지인 바덴바덴까지 갔다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숙박비와 돌아올 경비까지 다 써 버려 돈을 부쳐달라고 독촉했다. 아내가 간신히 돈을 마련해 부치자 그 돈까지 룰렛에 쏟아부었다.
도스토옙스키 본인도 자기 모습에 진저리가 났는지 잠시 도박을 멈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안절부절못하고 울적해 하는 남편의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들었던 안나는 도박하러 갔다 오라고 권하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신이 나서 외출했지만, 역시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도박하다 풀이 죽어 돌아오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안나를 만나게 된 것도 도박과 관련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가불한 도박 자금 때문에 단기간에 장편소설을 한 권 완성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그가 구술필기를 위해 속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소개받은 사람이 안나였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26일 만에 단숨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그 작품이 《노름꾼》이다.
각성제나 마약에 의존하는 것이 몸에 굉장히 해롭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단 합법적인 물질에 대한 의존, 예를 들어 알코올 의존에 관해서는 몸에 좋지 않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보다 더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행위에 대한 의존이다. 도박하거나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행위에 의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십 년이 지나도 계속된다.
뇌의 선조체와 전전두엽을 연결하는 도파민 시스템은 보상 시스템이라고도 불리는데, 도파민 방출에 따라 기쁨과 쾌감을 맛봄으로써 그 행위가 강화된다. 즉 엄청나게 큰 충격적인 일을 겪지 않는 이상, 그 행위는 반영구적으로 멈추지 않는다. 의존증을 예방하는, 또는 이미 의존에 빠진 사람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은 그 위험과 유해성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의존증일지도 모른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다.
알코올 의존증은 나이가 들수록 증상에 가속이 붙는다고 알려져 있다. 젊을 때부터 마셨다 해도 이십 대 때는 음주 후 종종 실수는 해도 일은 문제없이 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삼사십 대에 접어들면 의존이 어느 시기부터 급속하게 강해져서 술이 떨어지면 불안하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거나, 업무 시간에 몰래 술을 마시게 된다. 마시는 양이 증가하기보다 마시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특징이다. 술이 떨어지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홀짝홀짝 계속해서 마신다.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기분도 울적해진다. 술이 들어간 상태가 원래 자신이라고 느껴진다.
이 단계까지 오면 간이나 위, 췌장 등의 장기가 상당히 부실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술을 마시면 몸이 고통스럽지만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약물 의존증 환자는 보금자리가 없는 사례가 많다.
최근 알코올 의존보다 더 심각해진 것은 약물 의존증의 증가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수면제와 항불안제에 대한 의존이다. 바비튜레이트계와 벤조다이아제핀계 약물은 의존성, 습관성이 강하며, 일단 의존하게 되면 끊는 것은 물론 양을 줄이는 것에도 강한 불안과 저항을 느낀다. 알코올과 항불안제 양쪽을 다 의존하는 사례도 많다.
의존 상태에 이르러 만성화되면 치료는 상당히 어려워진다. 좋아진 것 같다가도 다시 증상이 악화하기 쉬운 것도 약물 정신병의 특징이다. 가벼운 호기심에 약에 손을 대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약물 의존증은 부모와의 관계가 불안정하거나 안심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없는 경우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약물 의존증 외의 의존증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존 대상이 안전기지 대용이 된 것이다. 약물을 끊기 위해서도 안전기지가 될 존재는 꼭 필요하다.
옥시토신 시스템이 섭식장애를 유발한다.
섭식장애는 ‘음식을 먹는다.’는 가장 본능적인 행동의 조절에 이상이 생긴 상태다. 의존증은 쾌감을 주는 물질이나 행동에 대한 기벽인데, 섭식장애에도 기벽의 측면이 있다. 과식증은 먹는 것에 대한 기벽이고, 거식증은 체중을 줄이는 것에 대한 기벽이다. 그리고 의존증과 마찬가지로 섭식장애도 가족과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애착과 그 기반인 옥시토신 시스템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애착이 불안정한 사람은 옥시토신 시스템의 활동이 나쁘고, 그것이 섭식장애의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한편 과식증은 폭식(Binge Eating)이라고 해서 발작적으로 과식하는 행위를 보이는 것이 특징으로, 과식한 다음에 토하는 경우도 많다. 구토하면 음식물뿐 아니라 위액에 포함된 전해질 등을 잃게 되므로 신체의 균형이 깨져 노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다른 정신질환에서도 식욕 저하와 체중 증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젊은 여성에게 많은 비정형 우울증은 과식과 체중 증가가 특징이다. 조증 상태나 조현병처럼 뇌가 지나치게 활동하는 병은 거꾸로 몸이 야위어간다.
프랑스의 작가 장 주네(Jean Genet)는 병적 도벽이 있었다.
절도가 정신질환이라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절도를 반복하는 사람 중에는 물질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훔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적인 진단기준에서도 병적 도벽이라는 진단명이 엄연히 존재하고, 기벽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섭식장애가 다른 의존증이나 병적 도벽과 병존하는 사례도 많은데, 특히 애착 장애가 바탕에 깔린 경우가 흔히 접하는 패턴이다.
병적 도벽, 섭식장애, 의존증은 언뜻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근본에 애착 장애라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어린 시절에 안정적이고 충분한 애정과 안정감을 얻지 못했던 상처를 지워버리려다 다양한 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다.
병적 도박은 엄연한 정신장애다.
최근에는 도박 의존증이라는 단어가 더 일반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국제적인 진단기준에서는 ‘병적 도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병적 도박의 정의는 ‘본인, 가족, 혹은 직업상 수행을 파멸시키는, 지속해서 반복되는 부적응적인 도박 행위’로, 조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조건이 붙는다. 병적 도박은 엄연한 정신장애이며, 법적으로는 의료보호 입원(보호자나 배우자의 동의에 의한 강제 입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적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조증에 의해 낭비 행동을 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입원 치료를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조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거액을 도박에 쏟아붓는 것은 더 상황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병이라는 인식이 더 널리 퍼져야 할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여장을 즐긴 성도착증 환자였다.
성생활은 유년기에 길러진 애착과 그 후 형성된 행동양식과 기호에도 좌우된다. 그것이 너무 미숙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대부분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행한 형태로만 성욕을 채우게 되기도 한다. 그런 문제를 성도착증이라고 한다.
성도착증이 양육환경에 현저한 문제나 편향이 있었던 사람에게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로는 언뜻 보기에 별로 문제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것 같은데 성도착증을 앓는 예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도 자세히 살펴보면 영향을 받기 쉬운 시기에 일종의 성적 자극을 받아 그에 대해 기벽이 성립돼 버린 경우가 많다. 자극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시기를 임계기라고 하는데, 인간의 성적 기호의 임계기는 다른 동물보다 길어 유년기부터 사춘기까지 이어진다.
비교적 빈도가 높은 성도착증에는 노출증, 페티시즘, 소아성애증이 있다. 다소 빈도가 낮지만, 접촉 도착증, 성적 피학증, 성적 가학증, 이성 복장 착용증, 관음증 등도 잘 알려져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아내 교코의 회상록에 의하면 여장을 즐겼다고 한다. 그 배경으로 소세키의 불안정한 양육환경의 영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수양아들로 보내졌다가 돌아오고, 또 양자로 들어갔다가 본가로 들어왔는데, 한때는 양부모의 불화로 양아버지와 양아버지의 애인, 그녀의 딸과 살았던 적도 있었다. 어린 소세키는 양아버지의 애인과 그 딸에게 마음이 끌렸던 듯한데, 그녀들과 동일화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