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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22. 2016

12. 당신이 늘 읽는 잡지야. (마지막 회)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평소 청소를 꼼꼼히 하기 때문에 12월이 되었다고 아사코가 특별히 바쁠 일은 없다. 설날은 구니카즈 친가에서, 초이튿날은 아사코의 친정에서 각각 저녁을 함께 먹기 때문에 아사코 자신은 오히려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부엌 구석 동그란 의자에 앉아, 두 권이 되고만 잡지를 팔락팔락 넘긴다.

“이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구니카즈가 그렇게 말하면서 잡지를 내밀었다. 누런 봉투째.

“당신이 늘 읽는 잡지야.”

어린애 같은 변명에 반론의 여지는 없다. 아내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남편의 최대한의 사죄를 아사코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데. 이런 거 안 사와도.”


벗어 던진 양복과 넥타이를 주워들면서 아사코는 말했다.

“어때. 그냥 선물인데.”

식탁에는 똑같은 잡지가 이미 놓여 있다.

“이 잡지는 벌써 샀어.”

잠자코 있기가 뭐해서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그래?” 하고 답한 구니카즈에게는 두 권이든 세 권이든 상관없는 일이리라.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기분’이다. 티끌 하나 없는 부엌에서 아사코는 생각한다. 그 사람이 내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언제나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으니까.

구니카즈의 경우, 목을 조르는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끔찍한 얼굴을 하고 화를 내면서, 그러나 의외로 통제된 힘으로. 몸부림치면 구니카즈가 두 손에 힘을 더 주니까 몸부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아프고 무서워서 아사코는 끝내 저항하고 만다. 숨이 막히고, 얼굴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아 생각 따위는 할 수 없다. 그러다 대개 구니카즈가 히죽 웃고는 아사코를 휙 밀쳐내면서 말한다.

“이제, 알겠어?”

심하면 식탁 의자를 쓰러진 아사코 몸 위로 쳐드는 일도 있지만, 실제로 내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사코가 겁에 질린 나머지 구니카즈를 꼬집기라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키우는 개에게 손이라도 물린’ 것처럼 격노한 구니카즈는 아사코를 마구 때린다. 얼굴과 배를 때리고, 아사코가 몸을 웅크리면 이번에는 걷어찬다. 쓰러지면 올라타 또 목을 조르고 머리칼을 움켜쥐고 바닥에 쾅쾅 내리치기도 한다.

“알겠어?”

구니카즈는 했던 말을 또 한다. 그럴 때면 언제나 얼굴에 침이 튀어서 불쾌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걸 불쾌하다고 느끼는 자신이 신기해서 아사코는 속으로 웃는다. 그때쯤이면 구니카즈도 힘이 빠져서, 아사코는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폭력을 휘두른 날 밤이면, 깊은 밤, 오열하는 오싹한 소리에 잠이 깬다. 잠옷 차림의 구니카즈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안경을 낀 채 울고 있는 것이다.

“울지 마.”

그러면 아사코는 위로해주어야 한다. 머리를 쓰다듬고 — 처음 만질 때, 아사코는 손이 떨린다 — 젖은 볼을 닦아준다. 그러면 구니카즈는 아사코의 아픈 몸에 매달려 훌쩍거리면서 사죄의 말을 더듬더듬 내뱉는다.

다음 날 아침에는 둘 다 말수가 적다. 아사코는 남편이 내는 소리 하나하나에 깜짝깜짝 놀라는 바보 같은 자신을 깨닫는다.

“괜찮아.”

위로하는 말로 치면 자신이 더 어른인데.

구니카즈의 폭력은 결혼하고 2년쯤 지나자 시작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구니카즈는 밖에서는 폭력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이 아사코는 그 행위를 구니카즈의 책임이기보다 부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아사코는 이쿠코에게만 그 얘기를 했다. 작년의 일이다. 이쿠코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얘기를 들었다.

“왜 헤어지지 않는데?”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백만 번은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이고 또 대답이었기에 아사코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원래는 착한 사람이야.”

진심을 다해, 그렇게 덧붙였다. 구니카즈만큼 착한 사람을 아사코는 달리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언니 죽으면, 우린 어떻게 하라고?”

이쿠코가 물어, 아사코는 웃었다.

“절대 안 죽어. 걱정 마. 그렇게 심하게 때리는 것도 아니고. 늘 힘도 조절해가면서 맨손으로 그러는데, 뭐. 병원에 가야 할 만큼 심한 적, 한 번도 없었어. 그렇게 심각한 폭력 아니야.”

이쿠코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아사코를 보았다.

“정말 모르겠어.”

그러고는 자신이 구니카즈와 얘기해보겠다고 말했다. 아사가야의 복작복작한 방에서.

그때 이쿠코는 밀크티를 끓여주었다. 짝이 하나도 맞지 않는, 그래도 찻잔에 접시까지 받쳐서.

그다음 주, 이쿠코는 카운슬러와 상담센터와 ‘여자의 집’ 등의 팸플릿을 한 아름 갖다주었다. 두세 번 찾아가보았지만, 그런 곳에서 하는 말은 자신과 구니카즈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구니카즈는 애당초 폭력적인 인간이 아니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 아사코가 잘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필요로 해.”

몇 번이나 그렇게 말하다 보니, 이쿠코도 이제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묻지 않게 되었다.

“알았어. 그러니까 아사코 언니가 좀 마조히스트인 거네.”

내키지 않아 했지만 그야말로 이쿠코다운 논리로, 아사코 생각에는 얼토당토않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저녁 여덟 시. 아사코는 일어나 식탁에 그릇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제 곧 구니카즈가 돌아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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