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한번은 트럭을 운전하면서 신호를 기다리다 신호 위반한 택시를 봤다. 기사 아저씨가 급하게 차에서 내린다. 교통경찰을 데리고 후미진 곳으로 간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을 보려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급하게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빈다. 경찰 아저씨를 올려다보면서 싹싹 빈다.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아무 상관 없는 내가 당황스럽다. 뭘까 싶다. 돈 몇만 원에 오십 대는 되어 보이는데, 어쩌면 닳고 닳아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저렇게 무릎 꿇고 비는 건 남자가 쉽지 않은데, 더 지켜볼 수가 없다.
술을 먹으면 무조건 대리운전을 부른다. 밤 11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대리기사에게 요즘 돈벌이 좀 되느냐고, 멀뚱멀뚱 말없이 가기가 그래서 상투적인 몇 마디를 던졌다. 회사에서 퇴근해서 8시에 출근했단다. 투잡을 해서 많이 벌 때는 오백이 넘는다고. 자기는 세상이 다 돈으로 보인다고. 얼마든지 할 게 많다고. 일이 없다 없다 해도 자기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있단다. 피곤하지 않으냐고, 잠은 언제 자느냐고 물어보려는데, 딸이 둘 있는데 애들 재롱 보면 힘이 난단다. 이 아저씨 바빠서 아프지도 않겠다 싶다. 아플 틈이 없어 보인다. 상투적인 말 몇 마디 건네다가 정신교육을 받는다.
어른들은 얼마든지 사악해질 수 있다.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도 있다. 삶에 각인된 고통 속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면 아오지 탄광에서 일하는 것처럼 힘든 게 맞는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살게 된다. 사악해지고, 비굴해지고, 아오지 탄광에서 일하듯이 일하면서, 그런 생활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있다. 그 시점이 있다.
사람의 가슴에서 강제로 자기 마음을 꺼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시기가 있다. 아버지가 되면서, 자식이 커가면서 서서히 마음을 꺼낸다. 그게 사람으로 사는 고통인 줄도 모르고 자식이 웃으면 웃게 되고, 자식이 울면 울게 되면서 자신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저 아이를 지켜줄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감수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한다.
덜떨어진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았던 사람에게도 자식이 생긴다. 젊어서, 무능해서, 배운 게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물러나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웃고, 쉽게 노래 불렀던 사람들. 조금 무안하면 도망치던 사람들. 그들에게 자식이 생기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된다. 네가 싫으니 가라고 해도 그 자리에서 울며 매달리게 된다.
추운 겨울 새벽. 사람이면 누구나 일어나기 싫은데, 그 새벽에 벌떡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뭐가 그렇게 고맙고 세상에 감사한지, 뭐가 그렇게 아쉬워서 매달리며 살아가는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꺼내는 수술대를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게 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함. 사랑하는 내 자식.
아버지라서 아버지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마음이 없어서 고통도 없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살아가는 동안에 아버지일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