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수면 시스템을 이해한다는 것은 수면을 지배하는 두 가지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체내시계와 수면 부채다. 이 두 가지에 의해 잠을 깊이 자느냐, 못 자느냐가 결정된다.
체내시계는 뇌뿐만 아니라 몸의 다양한 장기에서 낮과 밤의 리듬을 조절하는 시스템이다. 밤이 되면 졸리고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는 것은 체내시계의 리듬이 낮과 밤의 리듬에 정확히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내시계 리듬이 틀어지면 밤에 자려고 해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려고 해도 이불에서 나오는 게 일이 된다. 이것은 체내시계의 수면 리듬이 뒤로 밀려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수면 위상지연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오십 대 정도부터는 서서히 밤에 일찍 잠들고 아침에 일찍 잠이 깨게 된다. 때로는 오후 6시 즈음에 잠들어 새벽 2시에 깨는 사람도 있다. 수면 리듬이 앞당겨져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수면 위상전진 증후군이라고 한다.
체내시계의 리듬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낮과 밤의 리듬에 맞춰 거의 24시간 주기로 도는 것이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다. 다만 현대인의 일주기 리듬 주기는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으로 설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수면 리듬이 후퇴해 야행성이 되기 쉽다.
왜 1시간이 밀려버렸을까. 그 원인은 전등의 발명으로 인해 밤에도 강한 빛을 쬐게 됐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빛을 완전히 차단한 환경에 놓이면 24시간 주기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체내시계는 빛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아니, 영향을 받기 쉬운 정도가 아니라 항상 빛에 의해 체내시계가 조정된다. 한낮의 실외 밝기는 10만 럭스 정도다. 그러나 실내에 있으면 아무리 형광등을 휘황찬란하게 켜놔도 기껏해야 1천 럭스에서 2천 럭스가 된다. 실외의 빛이 엄청나게 밝은 것이다. 야행성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가 떠 있을 동안, 특히 아침에 햇볕을 쬐는 것이 가장 좋다.
체내시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일주기 리듬 외에도 더 짧은 주기로 졸음이 찾아오는 리듬도 있다. 그중 하나는 반일주기로 졸음이 변동하는 반일주기리듬(Circasemidian Rhythm)이다. 반일주기 리듬의 정점은 낮 1시경과 밤 1시경에 찾아온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졸린 것은 배가 불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반일주기 리듬에 의한 면도 있다.
밤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버리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반일주기 리듬이 졸음이 약해지는 시간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늦어도 12시까지는 잠이 드는 것이 깊이 자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이런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반일주기 리듬보다 더 짧은 주기인 것이 불과 1시간 반 만에 졸음 주기가 한 바퀴 도는 초일주기 리듬(Ultradian Rhythm)이다. 전혀 졸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4, 50분 사이에 졸음이 심해지는 시간대가 찾아온다. 이 짧은 기복을 잘 활용하는 것이 잠을 잘 청하는 비결이다.
이 초일주기 리듬에 의해 잠자고 있는 시간에도 잠이 얕아졌다 깊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수면에서 이 1시간 반이 하나의 단위가 된다. 불면이 가장 심할 때는 이 단위가 하나에서 둘, 즉 1시간 반~3시간밖에 잠들지 못한다. 보통은 이 짧은 사이클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해서 7, 8시간을 수면한다. 이 중에서 깊은 잠은 최초의 2개 사이클 정도로 그 뒤로는 비교적 얕은 잠을 반복한다.
꿈을 꾸는 렘수면 vs. 꿈을 꾸지 않는 비렘수면
가장 얕은 수면을 렘수면이라고 부른다. 렘(REM)이란 급속 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의 약자로, 이 시기에 안구가 좌우로 빠르게 운동한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렘수면은 잘 알려진 것처럼 꿈을 꾸는 수면이다.
렘수면 외의 수면은 비렘수면이라고 부르는데, 수면의 깊이에 따라 4단계로 나눈다. 이 중에서 가장 깊은 수면 단계인 3단계와 4단계를 합쳐서 서파수면(徐波睡眠, Slow Wave Sleep)이라고 한다. 뇌파가 느려진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서파수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최초의 2, 3시간뿐이다.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잠은 서파수면 등의 비렘수면이라고 밝혀졌다. 동물을 이용해 비렘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실험했더니 2주 만에 사망했다. 사망한 동물을 해부하자 보통은 번식하지 않는 세균이 혈액 안까지 증식하고, 면역 부전 상태를 일으키고 있었다. 수면, 그중에서도 비렘수면은 면역 기능 유지에 꼭 필요하다.
이 외에도 해마 등의 신경세포가 죽고 위축을 일으켰다. 우울증인 사람에게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비렘수면이 줄어드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알려졌다. 비렘수면 중에는 상처 입은 신경세포가 회복된다. 비렘수면이 부족하면 신경세포에 손상이 축적되고, 그것이 각종 정신질환의 원인이 된다.
그에 반해 렘수면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렘수면은 마음을 청소해주는 작용을 한다. 상처 입은 신경세포를 회복시키는 것이 비렘수면이라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은 렘수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렘수면의 필요도는 개인차가 크다고 알려졌다. 렘수면을 차단하는 실험을 하면, 많은 사람이 부족분을 되찾기 위해 렘수면을 많이 취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거의 영향받지 않는다. 롱 슬리퍼(Long Sleeper)라고 불리는, 장시간 잠을 자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은 렘수면에 대한 욕구가 크다. 그에 반해 단시간 수면으로도 문제가 없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는 렘수면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 어느 쪽이 좋다기보다 자기 체질에 맞는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수면 시간은 너무 짧거나 길어도 사망률이 높아지며, 가장 사망률이 낮은 것은 7시간 전후로 잠자는 사람들이다.
숙면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수면 부채다.
수면 부채란 잠을 자지 않을 때 축적되는 빚으로, 수면 부채에 비례해서 졸음도 강해진다. 아침 6시에 일어난 사람과 정오에 일어난 사람을 비교해보면, 똑같이 밤 10시에 잠을 청하는 경우, 전자는 일어난 지 16시간이 지났지만, 후자는 아직 10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다. 수면 부채가 아직 조금밖에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아침 6시에 일어난 사람이라도 낮에 낮잠을 자면 수면 부채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낮잠을 자는 방법이다. 한 사람은 소파에 누워 1시간을 푹 자고, 다른 사람은 의자에 기댄 채 30분 선잠을 잤다. 수면 부채는 어떻게 될까? 시간으로 비교하면 30분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발생한다. 양쪽 모두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고 쳤을 때, 선잠을 잔 사람은 수면 부채가 아주 조금밖에 줄지 않았다. 선잠을 잘 때는 깊은 잠에 빠지려고 하면 목이 갑자기 팍 꺾여서 잠에서 깨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워서 잔 사람은 편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깊은 잠인 서파수면에 그대로 빠져든다. 서파수면을 취하면 수면 부채는 단숨에 제로에 가깝게 복귀된다. 오후 2시에 일어났다면 오후 10시에 수면 부채는 8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밤에 잠을 잘 자려면 수면 부채를 어느 정도 쌓아둘 필요가 있다. 낮잠도 누워서 자지 말고, 의자에 기대자는 정도로 해둔다. 시간도 20~30분이 바람직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활기를 되찾을 수 있고, 밤 수면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누워서 자다가 서파수면까지 들어가면 거꾸로 몸이 나른해지고 나중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서파수면 중에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오히려 능률이 확 떨어진다. 그나마 잘 일어나면 다행이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난 경우도 생긴다.
물론 수면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채우려고 할 때는 누워서 자는 것이 좋다. 서파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에너지를 회복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낮잠을 잘 때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쇼트 슬리퍼로 유명한 에디슨은 잠이 오면 손에 철로 된 무거운 공을 쥐고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고 한다.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 공이 바닥에 쿵 떨어지면 그 소리에 눈을 뜨고 다시 일을 재개했다. 즉 서파수면에 들어가려고 할 때 수면을 중단시킨 것이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상쾌함을 되찾을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직장인이 수면 부채가 적을 리는 거의 없겠지만, 퇴직한 세대나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 중에는 불면의 원인이 실제로는 너무 적은 수면 부채에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점심이 다 돼서 일어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을 청하지만, 그렇게 자도 잠자리가 편치 않아 수면제를 더 먹어서 다음 날에도 약 기운이 남아 점심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경우다.
실제로는 수면제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낮에 적당히 활동하는 것이다. 잠이 와도 낮잠은 살짝만 자둔다. 절대 이불을 펴고 잠들면 안 된다. 그렇게 수면 부채를 한껏 쌓아두면 체내시계가 졸음이 강하게 오는 시간대를 엿보다 자연스레 잠에 빠지게 된다.
잠이 잘 오는 수면습관을 들이자.
□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한다.
체내시계를 교란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휴일이라도 점심때까지 자지 않고 최대한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도록 신경을 쓴다. 휴일 전날에 야근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일요일 아침에 피로가 몰려와 몸이 힘들어질 수 있다.
□ 침대나 침실은 잘 때만 사용한다.
잠드는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침실이나 침대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졸음이 오는 조건반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침대나 침실에서는 자는 것 외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고민할 게 없겠다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건 습관과 훈련의 문제다.
□ 식사나 음식, 운동도 중요하다.
낮의 적당한 운동은 체내시계의 리듬을 최적화시키고, 수면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다만 잠들기 직전에 하는 운동이나 격한 운동은 뇌와 교감신경을 흥분시켜서 역효과를 일으킨다. 또한, 잠들기 직전의 과식이나 음주는 밤중에 속 쓰림이나 가슴 통증을 일으켜 얕은 잠을 자게 한다. 불면의 원인에 위나 식도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기능성 소화불량, 위·십이지장궤양 등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은 수면 장애를 개선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체내시계를 제어하라.
현대인은 체내시계가 틀어지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잠을 깊이 자고, 또 수면 시간을 필요에 맞춰 조정하기 위해서는 체내시계를 조절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우선 젊은 사람에게 많은 수면 위상지연 증후군을 수정하는 방법부터 설명해보겠다. 이때 필요한 것은 수면 리듬을 앞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무리해서라도 일어나서 햇빛을 받는다면 효과적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막상 아침이 되면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어젯밤의 결심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좌우지간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그럴 때 사용할 방법이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롤 스크린이나 커튼을 열어놓는 정도를 바꾸는 방법으로, 아침에 방의 밝기를 조절해서 체내시계를 수정하는 것이다. 커튼이나 롤 스크린을 점점 활짝 열어놓는다. 그런데 이때 특히 문제인 것은 암막 커튼을 쓰는 경우다. 암막 커튼은 수면 리듬의 후퇴를 일으켜, 밤에 잠이 잘 안 오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원인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사람은 암막 커튼은 피하는 게 좋다. 특히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해 뜨는 시간 자체가 늦어지기 때문에 수면 리듬도 같이 늦춰져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진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커튼을 활짝 젖혀서 채광을 좋게 한다. 빛이 들이치는 면적을 아주 조금만 조절해도 눈 떠지는 시간이 달라진다. 자고 있어도 인체는 빛을 느끼고, 수면과 각성 리듬이 그 빛의 영향을 받는다. 볕이 거의 들지 않는 방에서 지내고 있다면 방을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 밝은 방으로 바꾸는 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예도 있다. 빛은 수면 문제뿐 아니라 기분과 의욕에도 영향을 준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힘이 잘 빠지는 사람은 특히 볕이 잘 드는 방을 고르기 바란다.
때로는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