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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19. 2016

06. 현모는 희생하지 않는다.

<사임당 평전>

사임당이 7남매를 어떻게 교육했는지의 내용이나 그 교육 사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따라서 지금 전하는 사임당의 자녀 교육 내용이나 교육 사상은 일부 저자들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렇기에 사임당의 교육 사상을 논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 기록이 없으므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사임당을 논함에 있어 7남매를 기른 교육철학을 빼놓고 논한다는 것은 대들보를 하나 세우지 못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임당의 행적과 7남매의 저술 및 작품을 중심으로 사임당의 교육관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양귀비와 도마뱀」, 신사임당 | 32.8×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사회를 이끌었던 유학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본성을 성실하게 실현하여, 그 덕을 함양하고, 훌륭한 인격을 완성하여 군자(君子)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조선 시대 교육의 핵심은 바로 군자에 이르는 것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던 조선 시대에 여인의 몸으로 군자에 이른 사람이 바로 사임당이다.
     
사임당이 살았던 조선 초기의 성리학은 조선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통치 이념이었다.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철저하게 성리학의 지배를 받았으며, 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육 이념, 교육 목적, 교육 내용과 방법 그리고 교육 제도들은 성리학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수립되고 시행되었다. 
   

사임당 평전 343 「원추리와 개구리」, 신사임당 | 32.8×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교육의 목적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고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에 두었다. 수기(修己) 즉, 자신을 닦는다는 것은 개개인의 선천적인 도덕성을 올바르게 키워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수양한다는 뜻으로, 이 도덕성의 완성을 이룬 사람을 군자(君子)라 하여 존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하여 배척했다. 치인(治人)은 천하를 이상적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성리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대학』에 있는 것과 같이 몸을 닦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집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데까지 도달해야 한다. 즉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이는 결국 성현을 본받아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법성현(法聖賢)을 말하고 있다. 성인(聖人)이란 인간 본래의 성품을 다하는 사람이며, 자기를 완전히 실현하는 사람으로, 유학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이런 성인이 되기를 구하는 학문이 바로 성리학이다.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신사임당 | 32.8×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성리학의 가르침 속에서 사임당은 이러한 ‘수기치인’과 ‘법성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성장하였을 것이다. 일찍이 사서오경에 통달하여 높은 학문에 이르렀으며 특히 기품 있는 가문과 문향으로 이름난 강릉 땅에서 자라난 까닭에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깊이 젖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의 모든 학자가 그러했듯이 주자학에도 깊이 심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임당은 공맹의 가르침에 깊이 영향을 받아 몸소 그 가르침을 지키려 애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7남매의 교육에서도 공맹의 가르침을 구현하려고 힘썼을 것이다. 특별한 스승 없이 사임당의 가르침으로 대성현의 위치에 오른 셋째 아들 율곡의 학문으로 사임당의 가르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지적 능력이나 정신적 토양이 결과적으로 율곡의 학문으로 조선 사회에 펼쳐진 것으로 본다면 지나칠까.
     
부단한 자기 수양으로 완성된 도덕과 학문으로 사임당은 자녀들을 원만히 교육함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스스로 지어 부른 사임당이라는 호에 ‘사(師, 스승 사)’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것만 보아도 그녀의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자기 인생의 지표가 될 만한 위인을 마음속에 새겨 두고 평생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산차조기와 사마귀」, 신사임당 | 32.8×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임당의 이러한 삶의 가치관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멘토를 중요시하는 지금의 교육에 비추어 봐도 사임당은 이미 교육에 관한 한 선구자였다. 사임당은 자녀들을 교육하려면 우선 본인부터 솔선수범하여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현재까지 전하는 사임당의 예술 작품 대부분이 결혼 후에 자녀들을 낳고 기르는 기간에 쓰이고 그려진 것이다. 자신의 재능 역시 결혼을 이유로 희생하지 않았다. 
     
혹여 강릉에서 친정살이하며 편하게 지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임당은 강릉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도 파주, 강원도 봉평 등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몸도 허약하였다고 전하는 그녀가 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사 다니고 살림하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곱 살부터 시작한 그림을 출산과 육아 기간에도 손 놓지 않고 꾸준히 화폭에 담아냈다.
     
학문도 마찬가지였다. 늘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바쁜 와중에도 책을 읽지 않은 날이 없었을 것이다. 율곡뿐 아니라 큰딸 매창과 막내아들 이우 역시 학문과 서화에 뛰어났던 것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시에 담고 거문고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감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가 교육의 본보기였다. 
     
7남매를 가르치려고 강압적으로 교육을 하기보다는 어머니가 그 스스로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며 집 안에서 날마다 글 읽는 소리와 먹 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해주었으니,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7남매가 어찌 학문에 매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금의 교육 전문가들도 자녀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이는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실천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자식 교육에 있어 부모의 본보기 교육만큼 확실한 건 없다. 이처럼 7남매가 사임당과 같이 둘러앉아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전인교육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사임당은 조선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침에 있어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임당 역시 어려서부터 외조부모와 부모의 편견 없는 교육을 받고 성장했던 터라 7남매 모두에게 차별 없는 교육을 실천했을 것이다. 특히 큰딸 매창은 어머니를 닮아 시・서・화에 능했는데, 사임당은 딸의 재능을 알아채고 부덕은 물론이요, 학문과 재능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독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창 또한 ‘작은 사임당’이라 불릴 정도로 어머니를 똑 닮은 현명한 여성으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했기에 율곡도 정사를 살피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매창에게 물어 답을 얻었고, 사임당에 견줄 만한 예술 작품까지 남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사임당은 자식을 가르치는 수직적 관계의 부모가 아니라 자식과 함께 배우고 익혀 나가는 수평적 관계의 부모의 모습을 실천한 교육자였다. 훗날 율곡을 포함한 7남매는 ‘어머니 사임당’을 ‘진정한 스승 사임당’으로 평가하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
    

「오이와 개구리」, 신사임당 | 32.8×2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사임당은 결국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집안을 운영하고, 자녀들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게 한 선구자적인 교육자였다. 우리가 통속적으로 알고 있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헌신하는 수동적인 여자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거대한 남성 사회의 틀 안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수기치인에 힘쓴 여성으로서 신사임당을 봐야 할 때다. 이것이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정한 사임당의 모습이다. 사임당이 7남매에 많은 가르침을 전했겠지만 직접 전하는 기록이 없어 그 내용을 모두 살펴볼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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