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와 구글에서 내가 배운 것>
신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척도는 돈이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은 한 사람 한 사람이다.
_Clayton M. Christensen
능력주의, 성과주의라는 말이 그 효과가 어떻든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경쟁이나 평가라는 것이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경우, 평가방법은 상대평가로 상위 10%가 A, 하위 10%가 C평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나는 이런 평가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잣대로 누군가와 비교하는 식의 경쟁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같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골인지점까지 끝까지 달리는 스포츠, 그리고 순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지하게 경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정말로 좋은 것을 만드는 사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경쟁자가 어떻든 ‘자신과의 경쟁’을 진지하게 치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벽을 뛰어넘어 정말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단순하고도 절대적인 관점으로 모든 것을 통찰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궁극적으로 유리해집니다.
그 사람이 A이고 자신이 C이기 때문에 안 된다든가, 그 사람이 C이고 내가 B이기 때문에 좋다든가 하는, 사람을 비교하는 경쟁따위는 “그래서, 뭐?”로 끝내야 합니다. 이런 경쟁보다 자신의 진정한 목적에 바탕을 둔 경쟁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이 공급자와의 계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경쟁자도 이 공급자와 계약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좋은 경쟁’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자신이 이기기 위해 다른 경쟁자가 그 공급자와 계약하지 못하게 하려고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경쟁’입니다.
실제 비즈니스에서도 그와 같은 사례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고객의 만족을 져버리고 다른 경쟁자를 이기고 싶다거나, 시장점유율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고객이 바라지도 않는 기능을 붙이거나, 고객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사양을 바꿔버리거나 해서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경쟁자가 아니라 항상 자신과 ‘높은 수준에서의 경쟁’을 의식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아마도 애플일 것입니다. 훌륭한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앱스토어, 세세한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에서 소비자를 매혹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제품을 위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철학에 반해서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또한 늘었습니다.
여기에도 ‘진정한 경쟁’에 대한 해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애플과 같은 제조 기업이든, 다른 기업이든, 나아가 어떤 개인이든 ‘자신이 믿는 최고의 것’을 목표로 삼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벤치마킹에만 빠져 ‘저 회사는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항상 경쟁자를 의식하는, ‘철학이 보이지 않는 회사’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회사에는 매력을 느낄 수 없겠지요. 그것은 회사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미학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