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사회적 통과의례가 무기력을 만든다.

<무기력의 비밀>

by 더굿북

• Test Baby 과도한 테스트
• High Expectation 높은 기대
• High Competition 높은 경쟁
• High Loading 높은 수행과제
• Only one child 한 자녀 혹은 두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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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과정은 우리나라 아이들에 대한 외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테스트 베이비’라는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은데도 아무런 의욕이 없는 아이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늘 피곤하다며 학교에 와서 엎드려 자는 아이들, 모두 과잉보호에서 비롯한 무기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한번 더듬어보자.

통계를 보면 2012년도 고3에 비해서 2013년도 고3이 수면이 부족한 걸로 나온다. 그러면 단순히 ‘잠을 더 못 잤으니까 2013년도 고3이 공부를 더 했나 보군’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갈수록 수면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런 통계에 교사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밤잠을 위주로 조사해서 그렇지 학교에 와서 자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수면 부족이냐, 반드시 낮잠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말하자면 실제로 만성적 수면 부족 판정을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무기력증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독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학습적 본능을 타고나는지 거의 세 살이 되면 공부를 시작해서 학습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학습이란 물론 사교육 형태를 띤 공식적인 교육을 일컫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 여덟 살짜리와 우리나라 여덟 살짜리는 학습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월등하다. 여덟 살이 될 때까지 풀어본 문제집과 경험한 학습 교구를 쌓으면 자신의 키 정도, 아니 키보다 높을 것이다.

일찌감치 시킨 조기 학습의 폐해는 초등학교 2, 3학년 때쯤 문제집을 풀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 학교에 가기 싫다 하는 식으로, 즉 학습피로에 노출된 아이들이 속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란 평생 하는 거고 늘 새로운 걸 배우는데 뭐가 피로하냐고 하겠지만 그건 어른이 된 다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깨닫는 즐거움은 자발적으로 할 때 생기는 것이지 부모나 교사의 강요에 의해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억지로 할 때는 생기지 않는다. 지금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이런 만성적 학습피로에 시달리는 ‘학습피로증후군’ 아이들이 태반이다.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아이들한테는 뭘 해보자고 해야 새로울 게 없고 이미 해본 것인 데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이는 아예 학습에 흥미를 잃게 된다.

특히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3~5세 아이의 부모들이 영재교육원이라든지 일정한 사교육 분야에 데려가서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이다. 평가를 받으려는 부모의 의도는 하나같이 ‘내 아이가 특별하다’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데 있다. 자기 아이가 특별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 역시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감지한다. 며칠 동안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영어 영재 테스트를 받고, 수학 영재 테스트를 받고, 예술 영재 테스트를 받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엄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가 어떤 때는 어두워지곤 하는 걸 보면서 말이다. 사람 관계란 늘 상호적이라서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완전히 속일 수는 없다. “엄마
는 너한테 특별한 거 바라지 않아. 그냥 한번 테스트해 보는 거야.” 이렇게 말해도 아이들은 엄마의 욕구, 즉 ‘내가 특별한 아이이기를 바라는’ 엄마의 심정을 느낌으로 충분히 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엄마들의 일부만 자기 아이가 특별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다는 데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아이들이 느끼는 원초적 부담감이 존재한다. 게다가 가정에 아이가 두셋 되는 것도 아니고 보통 한둘이다 보면 엄마가 자기한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아는 아이로서는 엄청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교장선생님이 일선 교사들에게 학교의 온갖 업무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교육청에서 평가라도 나올라 치면 마치 그 책임이 전부 교사들에게 있다는 듯 이것저것 지시하지 않던가. 각각의 영역에 책임을 맡은 교사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금세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교사들의 마음 상태와 아이들의 마음 상태가 같다고 보면 된다. 아이로서는 엄마 아빠의 너무 많은 기대를 계속 짊어지고 살아가려니 그 자체에서 오는 피곤함이 있다. 게다가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부모는 그때까지 느낌만으로 전하던 기대감을 이제 거침없이 드러내놓고 표현하게 된다. 자기 자녀에게 낮은 기대를 표현하는 부모는 별로 없을 테니까 기대 중에서도 높은 기대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기대와 한 쌍인 것으로 비교가 있다. 초등학교 때는 ‘너랑 같이 유치원 다니던 누구는 공부를 잘한다더라’, 중학교 때는 ‘옆 집 누구는 어느 고등학교에 가려고 준비한다더라’, 고등학교 때는 ‘엄마 친구 아들은 어느 대학이 목표라더라’…. 친척 모임, 친구 모임, 종교 모임 등 어디를 가든지 아이들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나 없는 자리에서나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비교를 당한다. 그리고 비교당할 때 들이대는 근거는 ‘자식이라곤 너 하나뿐’이라는 멘트다.

세 살 때부터 학습자가 되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많은 기대를 받으며 자라고, 크면 클수록 더 자주 비교당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할 일은 너무 많은데 힘을 실어주는 사람은 없고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실컷 잔소리를 듣거나 혼나야 한다.

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 부모는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적게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한 교사가 어린이칭찬연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너무 아이들을 칭찬하지 않는다는 반성을 한 적도 있다. 이 조직은 칭찬 조례라는 것을 만들어 칭찬 활동을 장려하며 칭찬은 아이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라는 홍보를 해서 히트를 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칭찬 조례를 만든 시가 몇 군데 있기는 하다.

아이들을 계속 이런 환경으로 밀어 넣으면 어느 시점에 “나는 더 이상 못 견뎌!” 하고 외치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 전에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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