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Sep 21. 2016

12. 사랑받았으면 희생도 해야지.

<나는 언제나 술래>

봉고차에도 빵 상자가 100개는 실린다고 말하면서 반쯤 차 안에 들어가 있던 상체를 꺼낸다. 짐을 들고 돌아서려는데, 마주 선 바람에 돌아설 수가 없다. 아저씨는 어디가 아프시냐고 건성으로 묻는다.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했는데 4층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쳤단다. 어찌어찌 다시 전기 일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이번엔 가슴 쪽을 다쳤다고 한다. 등과 가슴이면 사람 몸뚱이 전부인데. 30년 넘었단다. 남편 대신 가장 노릇을 한 지. 올해로 환갑이란다.

 얘가 둘인데 다 커서 제 살길 찾고, 집에는 아저씨하고 둘이 산단다. 산재로 2년 살고, 그다음부터 근 30년 동안 안 해본 게 없다고. 빵은 13년을 했는데 요즘 장사가 안돼서 골치란다.
     
“약값이 많이 들어.”
   
먹는 약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힘드시겠다고 덤덤히 받는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구나 싶으면서 무조건 가슴 아플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에 서로 덤덤히 말을 주고받는다.
     
“아, 어쩌겠어. 사랑받았으면 희생할 각오도 해야지. 부부잖아.”
“아, 네.”
   
그렇게 마지막 슈퍼 납품을 끝내고 상계동에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일산으로 간다. 동창 모임은 무슨.
     
비도 오지 않는데 뿌옇다. 모든 게 그렇구나 싶다. 강철도 그런 식으로 30년을 견디지는 못하는데. 절망 같은 생활에 강철도 못 버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나마 제 발로 걸어줘서 고맙단다. 뭐 그딴 게 고마운지. 미안하단다. 아저씨는 잘해주는데 자기가 바빠서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세상이 변하면 여자들 화장도 변하는데, 빵 아줌마 화장은 30년 전에 유행하던 건가 보다. 빵 아줌마가 사랑받았다는 30년 전쯤에나 하던 화장인 모양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세상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인데 아저씨가 30년 전에 멈춰서 있다고 장사하는 사람 화장이 30년 전에 같이 멈춰 섰다. 사랑받았던 모습 그대로 멈춰 섰다. 사랑 한 번 안 해본 것처럼 보였는데. 그래서 찔러 본 건데.
     
“사랑받았으면 희생할 각오도 해야지.”
   
내가 사랑을 알기나 한 건지. 부끄러움으로 한없이 작아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강대국의 횡포를 고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