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세상을 바꾸다>
아래 포스터의 제목은 <물음. 아기들도? 답. 아기들도>이지만, 보통은 줄여서 <아기들도?>라 부른다.
이 포스터는 예술노동자연합 소속 작가 세 명이 제작했다. 미군의 베트남 주민학살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 작품은 1969년 12월 26일 자로 5만 부가 인쇄된 후 자원봉사자와 학생, 시민에 의해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 뿌려졌다.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수많은 신문과 방송이 이 포스터를 자신의 매체에 다시 내보냈으며, 이를 받아본 많은 시민은 곧바로 복사본을 만들었다. 곳곳에서 포스터가 재제작되고 유포됐다. 그리하여 그것은 6~70년대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됐다.
<아기들도?>는 이후에도 반전집회와 시위의 단골 플래카드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반복해서 인용되고 패러디됐다. 닉슨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자 그를 반대하는 집회에서는 이 사진에 “4년 덜라고?”라는 글자만 바꿔 사용하는 등 월남전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괴롭히는 데 일조했다.
이 포스터가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전후 사정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이 작품은 현대의 전쟁과 국가, 정부의 홍보전략과 매스컴의 여론조작, 그리고 해묵은 논쟁이라 할 수 있는 “미술의 가치 기준은 아름다움인가, 진실인가?” 등의 문제에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포스터는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로널드 헤벌리라는 사람이 베트남 현장에서 찍은 사진에 포스터 제작자들이 붉은색 글자를 더해 인쇄한 것이다. 그 사진을 촬영한 헤벌리는 군인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부대마다 한 명 이상씩 있는 정훈 하사였다.
그는 사진을 찍었고 언제나 그의 사진은 상부의 검열과 선택을 거친 후 군인신문에 실렸다. 그런데 그는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이 찍은 사진 중 어느 한쪽 성향의 사진만 검열을 통과해 신문에 실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성향의 사진은 사진으로서의 가치와 상관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상부의 검열기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일반인들이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을 만한 ‘휴머니즘 사진’은 실렸지만, 전쟁의 긴박한 상황이나 처참한 진실이 담긴 사진은 여지없이 폐기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 현장에 나갈 때 카메라 한 대를 더 준비했다. 군에서 지급한 카메라에는 흑백필름을 넣었고, 개인 카메라에는 자비로 마련한 컬러필름을 장착했다. 그의 사진이 실리는 군인신문은 흑백이었으므로 흑백필름이 든 공적 카메라로는 보고용 사진, 즉 선택될 만한 사진을 찍고, 컬러필름이 든 사적 카메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찍었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헤벌리가 제대 후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왔을 때 그의 가방 안에는 그동안 찍은 컬러필름들이 있었다. 그는 그중 몇 장을 현상하여, 1969년 11월 클리블랜드의 한 신문사 플레인 딜러에 보냈다. 이후 그 신문사가 1면 머리기사로 공개한 몇 장의 사진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 사진은 미국 정부가 그동안 철저히 감추어왔던 전쟁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미라이 주민학살의 모습이었다.
사진은 무차별사격 직전의 순간에 떨며 울고 있는 주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몇 초 후 찍은 오른쪽 사진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길 위에 쓰러져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노인, 부녀자, 어린이, 갓난아기, 모두가 그 시쳇더미와 함께 있다. 미군의 만행을 명확히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곧바로 커다란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진들은 그해 12월 『라이프』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