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Sep 22. 2016

06. <아기들도?>의 탄생

<미술, 세상을 바꾸다>

아래 포스터의 제목은 <물음. 아기들도? 답. 아기들도>이지만, 보통은 줄여서 <아기들도?>라 부른다. 


<아기들도? 아기들도>, 1969. 예술노동자연합 회원 중 어빙 페트린, 존 헨드릭스, 프레이저 도허티가 제작.


이 포스터는 예술노동자연합 소속 작가 세 명이 제작했다. 미군의 베트남 주민학살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 작품은 1969년 12월 26일 자로 5만 부가 인쇄된 후 자원봉사자와 학생, 시민에 의해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 뿌려졌다.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수많은 신문과 방송이 이 포스터를 자신의 매체에 다시 내보냈으며, 이를 받아본 많은 시민은 곧바로 복사본을 만들었다. 곳곳에서 포스터가 재제작되고 유포됐다. 그리하여 그것은 6~70년대에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됐다. 


로널드 헤벌리, 미라이 학살, 미군이 자행한 미라이 학살사건 사진을 최초로 1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플레인 딜러」, 1969. 11. 20.


<아기들도?>는 이후에도 반전집회와 시위의 단골 플래카드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반복해서 인용되고 패러디됐다. 닉슨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자 그를 반대하는 집회에서는 이 사진에 “4년 덜라고?”라는 글자만 바꿔 사용하는 등 월남전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괴롭히는 데 일조했다. 

이 포스터가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전후 사정에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이 작품은 현대의 전쟁과 국가, 정부의 홍보전략과 매스컴의 여론조작, 그리고 해묵은 논쟁이라 할 수 있는 “미술의 가치 기준은 아름다움인가, 진실인가?” 등의 문제에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포스터는 처참하게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로널드 헤벌리라는 사람이 베트남 현장에서 찍은 사진에 포스터 제작자들이 붉은색 글자를 더해 인쇄한 것이다. 그 사진을 촬영한 헤벌리는 군인이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부대마다 한 명 이상씩 있는 정훈 하사였다. 

그는 사진을 찍었고 언제나 그의 사진은 상부의 검열과 선택을 거친 후 군인신문에 실렸다. 그런데 그는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이 찍은 사진 중 어느 한쪽 성향의 사진만 검열을 통과해 신문에 실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성향의 사진은 사진으로서의 가치와 상관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상부의 검열기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일반인들이 사진을 보며 미소를 지을 만한 ‘휴머니즘 사진’은 실렸지만, 전쟁의 긴박한 상황이나 처참한 진실이 담긴 사진은 여지없이 폐기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날부터 현장에 나갈 때 카메라 한 대를 더 준비했다. 군에서 지급한 카메라에는 흑백필름을 넣었고, 개인 카메라에는 자비로 마련한 컬러필름을 장착했다. 그의 사진이 실리는 군인신문은 흑백이었으므로 흑백필름이 든 공적 카메라로는 보고용 사진, 즉 선택될 만한 사진을 찍고, 컬러필름이 든 사적 카메라로는 마음 가는 대로 찍었다.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헤벌리가 제대 후 고향 클리블랜드로 돌아왔을 때 그의 가방 안에는 그동안 찍은 컬러필름들이 있었다. 그는 그중 몇 장을 현상하여, 1969년 11월 클리블랜드의 한 신문사 플레인 딜러에 보냈다. 이후 그 신문사가 1면 머리기사로 공개한 몇 장의 사진이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 사진은 미국 정부가 그동안 철저히 감추어왔던 전쟁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미라이 주민학살의 모습이었다. 

(위로 부터)미라이 주민학살 직전의 베트남 주민의 모습, 여성과 노인, 아이들까지 모두 사살되었다. 로널드 헤벌리 촬영, 1968.


사진은 무차별사격 직전의 순간에 떨며 울고 있는 주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몇 초 후 찍은 오른쪽 사진에서는 주민들이 모두 길 위에 쓰러져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노인, 부녀자, 어린이, 갓난아기, 모두가 그 시쳇더미와 함께 있다. 미군의 만행을 명확히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곧바로 커다란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진들은 그해 12월 『라이프』에도 실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사랑받았으면 희생도 해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