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Sep 22. 2016

07. 먼저 뜻을 세우라.

<사임당 평전>

어머니의 품은 자식의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고, 또 그 품에서 자아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곳이다. 또한, 그런 어머니의 품은 자식이 그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자식이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에 대처할 수 있도록 어머니는 따뜻한 사랑으로, 때로는 따끔한 회초리로 자식을 키워야 한다. 

     
그 교육의 중심에서 사임당은 7남매의 자식들에게 입지(立志)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을 것이다. 스스로 지은 자신의 호 ‘사임당’에 나타나듯이, 태임을 본받고자 했던 그 뜻은 태임이 현(賢), 엄(嚴), 의(義), 자(慈)의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도리를 고루 겸비한 여성으로 중국에서는 물론 조선 사회에서도 여성 군자로 추앙되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덕(德)만을 행했다 전하는 태임처럼 사임당 자신도 덕을 실천하여 규방 안의 좁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군자의 길을 걷고자 했을 것이다. 
   

「해행 사언잠(楷行 四言箴)」, 신사임당 | 3×50cm, 개인 소장


開巷對越 ㅣ 책을 펼치면 성인을 대하는 듯 
赫若有臨 ㅣ 황홀히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하여라 
年數不足 ㅣ 기약은 크옵건만 햇수가 모자라니 
怵然心警 ㅣ 문득 움칫하고 마음이 놀라도다 
_ 우경석(右警夕) : 저녁에 외는 경구



이렇게 어려서부터 인생의 목표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함을 알았던 사임당은 7남매에 입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입지란 한자 뜻 그대로 ‘뜻을 세우는 것’이다. 어떤 일을 행함에서 근본이 되는 마음 자세인 입지를 통해 일생의 목표를 뚜렷이 정하고 이를 위해 나아가다 보면 항상 초심을 마음에 되새기게 되어 스스로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초학 입문용 교재로 손꼽히는 『명심보감』 「입교편(立敎篇)」에도 입지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 날의 할 일이 없다.”
   
일생의 계획이 어릴 때 행해져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학문을 시작할 때 바른 뜻을 세워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임당이 7남매에 처음 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먼저 『명심보감』의 이 구절부터 가르치지 않았을까. 
     
사임당이 입지를 강조하여 교육했음은 맏아들 선의 일화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맏아들 선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사임당으로부터 학문을 익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입지를 강조하며 용기를 북돋워 준 사람이 바로 어머니 사임당이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과거를 응시한 기간을 생각해 본다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율곡이 과거에 처음으로 응시하여 진사시(進士試)에 장원한 것이 열세 살이라고 하니, 선은 그보다 늦은 20세 정도에 과거에 응하였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준비한 기간만 20년이 넘는 셈이다.
     
입지가 굳건하지 않았다면 선은 41세 늦은 나이에 진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유일한 스승이었던 어머니 사임당의 교육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한다. 사임당이 입지를 강조한 것처럼 율곡 역시 입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율곡은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입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율곡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부분의 저서 서두에서 모두 입지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입지는 율곡 사상의 두드러진 특색으로 평가받고 있다. 
     
율곡이 입지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기록한 것은 20세 때 자기를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쓴 글인 「자경문(自警文)」에서이다. 그 첫 번째에 “먼저 그 뜻을 크게 가져 성인으로서 표준으로 삼아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한 동안은 내 할 일이 끝난 것 아니리라.”고 쓰며 성인의 표준 역시 입지부터 시작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40세에 선조에게 지어 올린 제왕학의 지침서로 평가받는 『성학집요』의 첫 부분 역시 입지로 시작하고 있다. 신이 살피건대 학문을 닦음에 있어 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뜻을 세우지 않고서 능히 공부를 이룬 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몸을 닦는(修己)’ 조목에 ‘뜻을 세우는 것(立志)’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왕도 정치의 기본이라고 보았던 율곡은 임금 선조에게 수신하기 위해 입지가 우선시 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임금에게 직접 지어 올린 흔치 않은 저서에서도 율곡은 입지를 강조한 것이다. 
     
또 42세 때 지은 『격몽요결』 첫머리에도 입지에 관한 장을 두었다.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고, 꼭 성인이 되기를 자기의 목표로 하여, 한 터럭만큼도 스스로 적게 여겨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 또 무릇 사람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은 배움으로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입지 장에서는 뜻을 세우는 것만이 아닌 그에 따른 노력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47세에 지은 「학교모범」에서도 16조의 규범 중 첫 조에서 입지를 강조했는데,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입지는 그동안 율곡이 모든 저서에서 강조했던 바를 총망라해 놓은 듯 입지에 이르는 방법까지, 그래서 성인에 이르는 길까지 설명하고 있다.

“처음은 뜻을 세움이니, 배우는 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하며 도로써 자신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도는 높고 먼 것이 아닌데도 사람이 스스로 행하지를 않는다. 온갖 선한 것이 다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망설이거나 기다릴 것도 없으며, 더는 두려워하거나 머뭇거릴 것도 없다. 곧바로 천지로써 마음을 세우고, 민생으로부터 표준으로 삼으며, 옛 성인을 표준 삼아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 주는 것으로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물러서서 스스로 앞길에 한계선을 긋는 생각이나 우선 편안한 것을 바라서 스스로 용서하는 버릇은 털끝만큼도 가슴속에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 훼방과 명예, 영화로움과 욕됨, 이득과 손해, 화와 복, 이런 것들이 마음을 설레게 말아야 하며 분발하고 힘써서 기어코 성인이 되고 말아야 한다.”
   
이처럼 율곡의 입지에 대한 생각은 20세에 지은 「자경문」에서 47세에 지은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를 통하여 교육 사상의 핵심으로 저서 전반에 걸쳐 변함없이 추구되고 있다. 평생을 특히 율곡의 40세 이후 학문의 처음은 모두 입지로 대표되고 있다.
     
이처럼 사임당은 자신이 스스로 당호를 정하고 입지를 세웠던 것처럼 7남매의 자녀들도 자신이 걸어갈 인생의 목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설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써 행할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을 것이다. 『논어』「양화」 편에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배우고 익힘에 따라 서로 달라지고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고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군자가 될 수도 있고, 소인이 될 수도 있다. 
     
21세기 우리 시대의 교육은 아이들을 빨리 키우려고만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하여 바르게 키우기보다 빨리 키우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이 뜻을 세울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 뜻도 어머니가 자본주의 시대에 맞춰 맞춤형으로 제시해 주는 일이 허다하다. 500년 전 이 땅에서 일곱 명의 자식 농사를 지은 사임당의 교육 사상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사임당이 직접 실천으로 보여 준 본보기 교육만이 전할 뿐이다.

우리는 흔히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수직적 관계의 부모의 모습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21세기의 교육은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먼저인 쌍방향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사임당은 자식과 함께 배우고 익혀 나가는 수평적 관계의 부모 모습까지 실천한 진정한 교육자였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 학생은 없고, 다만 문제 학부모가 있을 뿐”이라는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제는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교육의 미래는 어머니에게 달려 있다. 그것이 바로 조선이라는 거대한 남성 사회의 틀 안에서 더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수기치인에 힘쓴 여성 군자 사임당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6. <아기들도?>의 탄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