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비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돕고자 한다면 앞에서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을 게으르다, 나태하다, 사악하다, 연약하다고 이해하는 관점을 전환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 역설적인 접근이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혼날 것을 준비하고 있거나 무가치한 취급을 받을 태세가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예상을 뒤엎어주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으레 대접받던 대로 받을 것에 대비해 무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무장해제시키면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접근의 기본 방향은 혼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서 대해주는 것이다. 집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편히 쉬게 해주고, 학교에서는 어떤 행동에는 이유가 있음을 알아주고, 필요하면 개별적 면담을 해서라도 아이들의 사연을 들어주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변화를 이끄는 출발선은 바로 이 역설적인 태도를 통해 아이들이 당황스러워하거나 멋쩍어하거나 생경해하거나 어색함을 느껴서 빈틈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최대한 역설적으로 접근해서 혼내는 대신 관심을 갖고 존중해주면서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역설적 접근은 심장이 정지한 환자가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실어 나르는 구급차 역할을 한다. 일단 와야 무엇을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을 변화의 장으로 오게 하려면 역설적인 접근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만약에 아이가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왔고 이에 대한 이해와 관점의 전환이 전제된 부모나 교사라면 역설적 접근에 기초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로 아이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열망이다. 지금까지 해온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새로운 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에게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해주려면 “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괜찮겠니? 엄마가(혹은 선생님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네가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 그동안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 너를 대할 때는 조금 다르게 하려고 해. 네가 최선을 다한 순간들이 있었고 또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앞으로 더 잘해주려고 노력할게. 네가 당장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어색할 수도 있지만 너무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당장은 아이가 어리둥절해하거나 무슨 계략을 꾸미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하거나 그도 아니면 조만간 제풀에 지치겠지,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교사들도 자는 아이들, 멍 때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교실에서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따로 불러내서 특별하게 해야 한다. 여러 명이라면 하나씩 차례로 불러내서 하면 된다.
“요즘 계속 힘든가 보다, 학교에 와서 누워 있고. 학교에 와서 자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선생님은 학교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다만,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어. 그런데 선생님은 네가 고민이나 갈등,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천천히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아까 말한 것처럼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편히 있도록 해. 그리고 하나하나씩 이야기해나가자.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들은 머쓱해하거나 나를 시험하나 보다 하는 기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방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그날 아이들끼리 메시지를 돌리면서 ○○ 선생이 뭘 잘못 먹었다거나, 돌기 시작했다는 등 교사의 낯선 접근에 뒷담화를 할 것이다.
이런 시도에 대놓고 까칠하게 반응하는 심각한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역설적 시도의 핵심으로 다음 세 가지다. 반복하던 잔소리 멈추기, 진심 어린 걱정 표현하기, 잘해주기.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존의 잔소리를 멈추는 것이다. 부정적인 관계를 고착화하는 가장 병적인 접근은 몇 년 동안이고 같은 잔소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아이가 예상하고 있는 꾸중을 그대로 반복하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겨워서 관계만 악화될 뿐 잔소리는 아이에게 확실한 핑곗거리를 제공하는 일이라서 상담할 때 하나같이 잔소리하는 부모님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는 것, 잘 안 씻는 것, 핸드폰 오래 들고 있는 것, 게임하는 것, 늦게 자는 것, 자세가 불량한 것 등등 무기력하고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모든 현상에 대해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마음먹고 잔소리를 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기 어려운 것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느 날 뚝, 잔소리를 끊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 어른들이 잔소리를 끊은 뒤에 아이들이 와서 하는 말은 한결같다. “집에 있기가 좀 편해졌어요.”, “학교 가서 교실에 있는 것이 그래도 좀 편해졌어요.”, “요즘은 있을 만해요.”, “그냥저냥 견딜 만해요.” 이런 반응은 역설적 접근에 대한 초기 성공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