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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6. 2016

08. 품격이 있는 말을 남겨라.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제갈량의 언설(言說), 교령(敎令), 서신(書信), 상주문(上奏文) 가운데 볼만한 것이 많다. 별도로 하나의 문집인 『제갈씨집(諸葛氏集)』을 만들었다.

_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진수는 정사 『삼국지』를 편제하면서 제갈량이 생전에 남긴 말과 글을 하나로 묶은 문집을 펴냈다. 그게 바로 『제갈량집』이다. 전해져오던 도중에 일부 사라지기는 했으나 청나라 건륭제 때 장주가 편집한 『제갈충무후문집』을 통해 그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제갈량전」에 따르면 진수는 『삼국지』를 저술하며 진무제 사마염에게 이같이 보고했다.
     
“신은 전에 저작랑(著作郞)으로 있을 때 시중 영중서감 및 제북후 신순욱, 중서령 관내후 신 화교가 상주해 신이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고사(故事)를 정리하게 했습니다. 제갈량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보필하고, 험한 땅을 등에 업고 위나라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말을 기록해 놓고 욕되고 훌륭한 언행을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로 대진(大晋)의 광명(光明)과 지덕(至德)이 두루 온 천하에 미친 것으로 자고(自古)이래 유례가 없던 일입니다. 중복되는 것은 삭제하고, 유사한 것은 하나로 모아 모두 24편(篇)으로 정리했습니다.”
   
진수 역시 『삼국연의』의 저자 나관중 못지않게 제갈량을 한없이 존경했다. 다만 그는 정사 『삼국지』를 편찬하는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관중처럼 임의로 얘기를 꾸며내지 못했을 뿐이다.
     
     

제갈량은 말과 글이 모두 뛰어났다.

진수가 『제갈량집』을 편제한 것은 기본적으로 제갈량의 말과 글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문집의 중요성을 통찰해서 통치의 참고자료로 진나라 조정에 제공한 것이다. 일찍이 위문제 조비는 문예이론 비평서인 저서 『전론』의 「자서(自敍)」에서 부친 조조를 이같이 칭송한 바 있다.
     
“시서문적(詩書文籍)을 좋아해 비록 군대 막사에 있을 때조차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가 전쟁의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칭송한 것이다. 제갈량도 마찬가지였다. 『삼국지』 「촉서, 선주전(先主傳)」의 배송지 주에 인용된 제갈량의 문집인 『제갈량집(諸葛亮集)』의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선주 유비가 임종 때 아들 유선에게 내린 유조에 이르기, ‘한가하면 제자백가서를 포함해 『육도』와 『상군서』 등을 읽도록 해라. 의지와 지혜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승상이 이미 『한비자』와 『관자』, 『육도』 등의 필사를 끝냈다고 들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네가 다시 청해 통달할 때까지 열심히 읽도록 하라’고 했다.”
   
제갈량이 병가와 법가 서적을 열심히 필사하며 유비에게 그 요약본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육도』는 태공망 여상이 쓴 것으로 알려진 병서이다. 여기의 도(韜)는 달빛 아래 칼을 갈며 은밀히 힘을 기르는 이른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뜻한다. 『상군서』는 전국시대 중엽 진나라를 최강국으로 만든 법가사상가 상앙(商鞅)의 저서이다. 『상군서』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농전(農戰)이다. 평소 농사를 지으며 ‘부국’에 매진하다가 전시에 용사로 싸우며 ‘강병’에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제갈량이 북벌 때 병사들에게 전투에 임하며 농사를 짓는 이른바 둔전(屯田)을 실시한 것도 『상군서』를 숙독한 결과다.
     
     

조조와 제갈량은 전장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역대 제왕 가운데 ‘수불석권’의 모습을 보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역대 왕조에서 위무제 조조와 당태종 이세민, 청세종 강희제 등을 꼽을 수 있다. 현대에 들어와 『자치통감』을 17번 통독한 ‘신 중화제국’의 창업주인 모택동도 유사한 행보를 보인 인물에 속한다. 주목할 것은 이들은 모두 일인자 리더십을 발휘한 제왕의 자리에 있었던 점이다.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재상의 자리에 있는 이인자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경우는 드물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오랫동안 세계 1위의 부자로 군림하고 있는 빌 게이츠도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고,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제갈량이 지혜와 신의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까닭은 그가 남긴 아름다운 글과 말들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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