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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28. 2016

13. 남의 편 (마지막 회)

<나는 언제나 술래>

영업이 그렇다. 일산에서 심하게 경쟁할 때였다. 일요일에도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갔다. 휴가 중에도 전화가 오면 중간에 시간을 냈다. 정말 화가 나면서도 거래처에서 커피 한 잔 타주면 커피를 마시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친해지는 것이 먹고 살길이다. 처음에는 이걸 몰라서 거래만 하다가 거래처를 많이 뺏겼다. 일 끝나면 나는 집에 왔는데, 일 끝나고 술 한잔 하는 사람한테 거래처를 뺏기고, 거래처에서 물건 팔고 바로 나왔는데 30분 얘기하고 나온 사람한테 뺏기고, 점심을 같이 먹는 사람한테 뺏겼다. 한 사람한테 그렇게 뺏겼다. 
     
사람이라 그냥 안다. 사람처럼 정교하고, 예민한 생명체가 없다. 아무리 친한 척해도 친한 것과는 구분한다. 아무리 말을 그렇게 해도 거래처 사장들은 진심이 아니면 바로 눈치챈다. 시간과 마음을 들이지 않으면 그걸 눈치챈다. 영업하다 보면, 친한 척하다 나중에는 정말 친해진다. 그리고 같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서로 걱정을 해준다.
     
처음에는 영업사원이 커피를 사지만 나중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된다. 아줌마들하고도 농담처럼 친한 척하다가 나중에는 정말 친해진다. 신랑, 부인하고도 말하지 못하던 속내를 서로 얘기한다. 신랑 흉을 같이 봐주고 부인 욕을 같이 해준다. 그런 척하던 것이 그래진다. 
     
그렇게 아삼육이 될 때 영업이 리듬을 타면서 먹고 살 만해지고 거래처하고 이런저런 술 약속도 생겨난다. 집에서 썩은 동태눈을 하고 늘어져 있다가도 거래처 전화가 오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된다. 
집에 돈을 벌어오려고 그러는 건데, 집에서는 시체처럼 살게 되고 거래처에선 늘 생기 있고 이해심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거래처에서 열 가지를 얘기하면 열하나를 들어준다. 집에서 집사람이 부탁한 한 가지는 거절한다. 
     
“몰라, 네가 해.”
   
집에서 애 한 번 챙기지 않다가도 회사 야유회를 가면 모든 아이를 챙기고 아줌마를 챙긴다. 표나게 웃으면서, 진심이 들어간 표정과 행동으로 말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남의 편이 된다. 영업은 그렇게 남의 편이 되어가는 과정 같다. 
     
며칠 뒤에 알게 됐다. 과자 장수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가정불화로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내가 방문한 거래처 중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럴 사람 아니라고,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과자 장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르고 자세한 내막도 모른다. 다만 과자 장수가 남의 편이었다는 것을 얼핏 들었다. 집에서의 생활보다 거래처 사람들하고 더 공감했고 그런 생활로 가정불화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신이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고, 뭐가 영업이냐고. 좋아서 술 마시고, 거래처 사람들 만나고 그런 거 아니냐고. 과자 장수 말을 들어본 건 아니지만, 그냥 아는 건데 말이다.
     
과자 장수는 그런 거 아니라고. 다 먹고 살자고, 돈 벌자고 하는 일이라고 변명했을 것이다. 집이 중요하지 거래처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라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도, 아니 진심으로 좋아해도 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영업은 마음을 다해 거래처와 친해지는 과정이라 누가 봐도 진심이고, 내가 나를 봐도 거래처를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다. 그렇지만 거래처와 집과의 무게감을 저울에 달아볼 수는 없다. 그런데 과자 장수는 그걸 증명해 버렸다. 거래처를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집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말이다. 아무리 영업이 잘 돼도 집에서 무너지면 못 산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거 증명하지 않고 남의 편이라고 욕먹으면서 그냥 살면 되는데 말이다. 증명한다고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꺼내 보일 수도 없는 건데 좀 속상하다고 그걸 증명해 버렸다.
     
남의 편, 남편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다. 남편이 맞다. 집사람보다 거래처 아줌마들한테 더 많이 웃어준다. 더 배려하고,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앞서 말하면서 거래를 이끌어간다. 남편이 되어야만 내 식구들이 먹고살 수 있는데 그걸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 되어야 사람들이 날 불러주고, 내 밥그릇을 채워주는데 그래서 마음을 다해 남편이 되는 건데 말이다. 
     
세상에 나가면 난 남편이다. 아니라고 증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우리 남편은 남편이야. 욕을 먹으면서 그냥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래처에서 처음 웃어주면서 커피를 타줄 때 이제 됐구나 싶었다. 덕분에 먹고 사니까 더 잘해주고, 더 친해지고, 같이 살면서 속상할 일이 없으니까.
     
그 과자 장수가 마음으로 진심으로 가꿔 온 거래처에서 먹고 산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그분의 마음만 알게 된다. 그분이 남편이 되면서 생겨난 가정불화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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