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조건, 열정으로 갈아신어라>
나는 거미 신발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시장성을 면밀히 조사했다. 물론 이 신발의 주요 구매층은 암벽 등반가였다. 당시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거미 신발이 출시되면 암벽 등반가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층 빌딩이나 선박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필요한 신발이 될 것이다. 확실한 구매층이 있고, 경제성 측면에서도 충분히 통하리라 자신했다. 이 신발이 출시되면 대박을 터뜨릴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이번엔 정말 대박 한번 치겠심더.”
마케팅팀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한 매장에서 선주문할 수 없는지 타진해왔다는 희소식이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이 신발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더.”
거미 신발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등산화업체에서도 우리 회사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독일 뮌헨에서 열릴 예정인 신발박람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부산의 작은 신발업체가 보이는 행보에 주목하다니, 상상만 해도 뿌듯해지고 온몸이 자지러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개발팀의 열기도 뜨거웠다. 팀원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이제야 비로소 ‘엽기적’이라고 손가락질당하던 나의 기발한 발상이 빛을 보는 것인가. 그런데 거미 신발 개발이 90% 공정률을 보일 무렵 전혀 예기치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내가 자루에 거미를 담고 디자인센터에 들어간 지 1년 2개월 만이었다.
“사장님예, 큰일 났심더. 신창원이, 신창원이 검거됐다고 합니더.”
1999년 7월이었다. 개발팀의 최 부장이 출근하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최 부장의 얼굴은 어둡고 침통해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앞에 조간신문을 내밀었다. 전대미문의 탈옥수인 신창원이 탈옥한 지 2년 6개월 만에 검거되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와 이리 호들갑이고”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창원이 검거된 것이 우리 회사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년 전 신창원이 탈옥한 곳은 다름 아닌 부산 교도소였다. 그래서 부산 시민들은 신창원의 탈옥 소식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은 연일 신창원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검거 당시 신창원이 입고 있던 옷도 덩달아 화제에 오를 정도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이것 좀 보이소.”
최 부장이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가리켰다. 최 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탈옥수 신창원, 아파트 벽 가스 배관 타고 베란다 안을 자유롭게 드나들어’
‘스파이더맨의 부활, 가스 배관 타고 아파트에 잠입’
그 기사를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그 기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년 넘게 거미 신발에 매달렸던 개발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행여 거미 신발이 출시됐다가 신창원처럼 아파트에 침입하는 데…….”
최 부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칫하다가는 거미 신발이 범죄에 악용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사흘 후, 또다시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신창원 모방 사건’이었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된 후 이를 모방한 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베란다 안으로 침입하는 사건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주저 없이 거미 신발의 개발을 포기했다. 이 신발을 개발하는 데 1년이 넘는 시간과 적지 않은 투자비가 소모되었지만, 이를 포기하는 결정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거미 신발은 포기한대이.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고 해도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으면 소용이 없는 기라.”
그렇게 말하고 디자인센터를 나서는데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무엇보다 개발팀원들에 가장 미안했다. 나는 그들이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