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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04. 2016

09. 근검하고 절약하라.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황우 2년인 1050년, 오주(吳州) 일대에 큰 기근이 들었다. 당시 절서(浙西) 지역을 다스리던 항주지주(杭州知州) 범중엄은 명을 내려 구제 양곡을 널리 나눠줬다. 백성들을 장려해 알곡을 저장하게 하는 등 여러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오주에는 경정(競艇)을 즐기는 풍속이 있었다. 오주 사람들 모두 불교를 숭상했다. 범중엄은 경정을 장려했다. 친히 구경을 나가 술을 마시며 함께 즐기곤 했다. 고장 백성들 모두 남녀노소 불문하고 봄부터 여름까지 호수에 나와 경정을 구경했다. 범중엄은 각 사원 주지들을 소집해 기황이 든 해는 품값이 제일 싼 때이니 이런 때 토목공사를 하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그의 권유로 각 사원 모두 인부를 써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그는 인부들을 고용해 관가의 창고나 역리의 집을 짓게 했다. 매일 고용한 인부 수가 1천 명을 넘었다. 


마침 이때 조정에서 감찰을 나왔다. 범중엄이 기근이 든 해에 국가 재정을 탕진하고, 백성들의 경정을 장려하고, 주지를 부추겨 토목공사를 벌인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범중엄을 탄핵하는 상주문을 올리자 범중엄도 자신을 변호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여기서 고하기를, ‘신이 백성들에게 경정을 하도록 하고 사원과 관가에서 토목공사를 벌이게 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 그런 게 아닙니다. 백성들에게 돈을 벌어 기근을 이겨내도록 독려코자 그런 것입니다. 그래야 부자들은 돈을 내고, 가난한 자는 품을 팔아 식량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방법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매일 1만 명이 넘습니다. 기근이 든 해에 백성을 위한 조치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범중엄이 의도적으로 『관자』 「치미」에서 역설한 ‘균부’ 차원의 사치성 소비 행보를 보인 것을 알 수 있다. 백성의 경정을 장려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대대적으로 토목공사를 벌린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효과가 자못 컸다.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 가운데 범중엄이 사치성 소비를 유도한 항주 일대만 평온했던 게 이를 뒷받침한다.
     
그가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천하가 걱정하기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가 즐거워한 연후에 즐거워한다는 뜻의 ‘선선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 후천하지락이락(後天下之樂而樂)’을 쓴 배경을 알 수 있다. 천고의 명구인 이 구절은 줄여서 선우후락(先憂後樂) 성어로 자주 사용된다. 『관자』 「치미」가 부자의 사치스런 소비가 빈자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언급한 근본취지가 여기에 있다. 범중엄은 그 요체를 통찰한 셈이다.
     
주목할 것은 『관자』 「치미」가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사치스런 소비를 권장한 점이다. 관원을 대상으로 사치성 소비를 권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했다가는 나라가 부정부패로 인해 패망하고 만다. 『관자』 「치미」가 일반 백성의 ‘치미’를 언급한 것은 백성의 이익 균점(均霑)이나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결코, 국가의 기본적인 경제정책으로 삼아도 된다고 언급한 게 아니다. 『관자』가 시종 군주를 비롯한 위정자의 근검 행보를 역설한 것과 하등 모순될 게 없다.
   


사서에 나오는 근검절약의 대표적인 사례로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 재상을 지낸 안영(晏嬰)을 들 수 있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만든 웃옷인 호구(狐裘) 한 벌을 30년 동안이나 입었다. 여기서 안영호구(晏嬰狐裘) 성어가 나왔다. 검박한 모습으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고관대작의 바람직한 자세를 뜻한다. 『사기』 「관안열전」에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 나온다.
     
“안영공은 제영공과 제장공 및 제경공 등 3대를 모시면서 검약한 모습으로 집무했다. 재상의 자리에 올랐는데도 밥상에 2가지 이상의 고기반찬인 중육(重肉)을 올리지 않고, 처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조정에서 논의 도중 군주의 입에서 자신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늘 겸양하며 자신의 공을 언급지 않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더욱 분발해 질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라에 도가 통할 때는 군명을 충실히 좇았고, 도가 통하지 않을 때는 가부를 잘 판단해 할 만한 것만 좇았다. 이에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됐다.”
   
춘추시대 중엽 초장왕 때 재상을 지낸 손숙오는 비록 제갈량처럼 자신의 사후 안으로 남는 비단이 있거나, 밖으로 여분의 재산이 있거나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제갈량과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열자』 「열부」에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나온다. 손숙오가 마침내 병이 들어 죽게 되자 자식을 불러 놓고 이같이 훈계했다.
     
“대왕이 나에게 자주 봉지를 내리려고 했으나 내가 이를 받지 않았다. 내가 죽게 되면 대왕이 곧 너희에게 봉지를 내리려 할 것이다. 이때 너는 미지(美地) 명성이 높은 땅을 받지 않도록 해라. 초나라와 월나라 경계의 동쪽 변경 침구(寢丘) 땅은 악명이 높은 땅이다. 그곳에 사는 초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믿는 까닭에 이를 시샘하지 않을 것이고, 이웃한 월나라 사람들은 이를 욕심 내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차지할 수 있는 땅은 오직 그곳뿐이다.”
   
손숙오가 이내 숨을 거두자 과연 초장왕은 그의 자식에게 ‘미지’를 봉지로 내리려고 했다. 이를 극구 사양하며 침구 땅을 내려줄 것을 청하자 초장왕이 들어주었다. 「열부」편의 이 일화가 회자하면서 이후 이를 근거로 한 많은 일화가 만들어졌다. 『여씨춘추』는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초나라는 공신에게 봉지를 내린 후 2대가 지나면 거둬들인다. 그러나 오직 침구 땅만은 빼앗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손숙오처럼 시종 이타적이며 청검한 삶은 산 사람이 자신의 사후 자식이 먹고살 것을 염려해 이런 ‘꼼수’를 부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후대인이 만들어낸 허구일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사마천이 활약하는 전한 초기에는 이 일화가 사실처럼 유포됐다. 게다가 온갖 살이 붙어 손숙오를 꼼수나 부리는 소인배로 만들어 놓았다. 대표적인 게 바로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수록된 소위 ‘우맹의관(優孟衣冠)’ 일화이다. 이에 따르면 당시 초나라에 우맹(優孟)이라는 유명한 배우가 있었다. 그는 풍자에 매우 능했다. 손숙오가 죽기 직전 아들을 불렀다.
     
“내가 죽으면 너는 필히 빈곤해질 것이다. 훗날 우맹을 찾아가 만나게 되면 나의 자식이라고 말하도록 해라.”
   
몇 년 뒤 아들이 극히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 우맹을 만나게 됐다.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부친이 임종 때 빈곤에 빠지면 우맹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았다. 잠시 동안 멀리 가 있지 않도록 해라.”
   
이해 말, 우맹이 손숙오의 의관을 걸치고 초장왕을 찾아가 손숙오의 표정과 동작을 흉내 냈다. 초장왕이 매우 놀라 술상을 차리게 했다. 우맹이 초장왕에게 헌수(獻壽) 하자 초장왕은 손숙오가 다시 살아온 것으로 생각해 곧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우맹이 말했다.
     
“청컨대 집에 돌아가 안사람과 상의했으면 합니다. 3일의 말미를 주십시오.”
3일 뒤 우맹이 다시 왔다. 초장왕이 말했다.
“부인이 뭐라고 했소”
“안사람은 할 바가 못 된다고 했습니다. 손숙오는 생전에 청렴하게 살면서 내정을 다스리고 초왕을 패자로 만들었건만 사후에 그 자식은 땔감을 져다 팔아 겨우 풀칠을 할 정도로 빈곤하게 지내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이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산속에 살며 고생스레 밭을 갈지라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다네!
관원이 돼 탐오한 짓으로 치부하는 건 치욕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네!
법에 걸려 몸이 죽고 일족이 멸하니 어찌 탐리(貪吏)가 될 수 있나?
법을 지키며 열심히 일할지라도 어찌 염리(廉吏)가 될 만한 일인가?
손숙오는 청렴했건만 처자식이 헐벗고 있으니 이 어찌 할 일인가?”
     
이에 초장왕이 곧바로 손숙오의 자식을 불러 침구 땅을 봉지로 내렸다. 「골계열전」은 마지막 대목을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초장왕이 침구 땅과 4백 호를 내리면서 대대로 손숙오를 제사 지내게 했다. 이후 10대가 지나도록 제사가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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