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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04. 2016

10. 바가바드기타 : 일상에서 깨달음을 (마지막 회)

<철학자의 조언>

인도의 건국 시조 바라타의 자손인 쿠루 족은 하스티나푸라(지금의 인도 뉴델리 북동쪽)에 살았다. 쿠루 족의 왕 판두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형 드리타라슈트라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 뒤를 이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판두의 다섯 아들과 드리타라슈트라의 백 명의 아들이 갈등했다. 드리타라슈트라의 맏아들 두료다나가 왕권을 강탈하자 판두의 아들들이 반발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쿠루 크세트라 대평원에 두료다나가 이끄는 부대와 판두의 맏아들 유디스티라가 이끄는 부대가 집결했다. 두료다나의 부대가 훨씬 우세했다. 쿠루 족의 가장 웃어른이자 당대 최고의 명장 비슈마 장군이 두료다나의 부대에 가담했다. 더욱이 두료다나와 유디스티라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스승 드로나 장군마저 두료다나의 부대에 가담했다.
     
전쟁은 18일간 계속되었다. 그런데 처음 예상과 달리 전쟁은 유디스티라 부대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전쟁 10일째 되던 날, 두료다나 부대의 상징 비슈마 장군이 전사하면서 전세가 급격히 유디스티라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전쟁은 유디스티라 부대의 승리로 끝났다.
     
이 쿠루 크세트라 전쟁은 이후 장대한 장편 서사시로 창작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 서사시가 《마하바라타(Mahābhārata)》다. ‘마하바라타’란 ‘위대한 바라타’라는 말로서 건국 시조를 찬양하기 위해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4세기경부터 기원후 2세기경 사이에 전 내용이 갖추어졌고 기원후 400년경에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확정되었다.
     
《바가바드기타(Bhagavadgītā)》는 《마하바라타》의 제6권에 해당하는 700편의 시를 따로 뽑아놓은 것이다. ‘바가바드기타’란 ‘초월적 절대자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런 제목이 붙여진 이유는 《바가바드기타》가 초월적 신인 크리슈나의 말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슈나는 유디스티라의 동생 아르주나의 마부로 등장한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상대로 궁극적 진리와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설파했다. 초월적 신의 말이라고 하여 의심을 품지 않게 하면서 신이 낮은 지위의 마부와 다르지 않다고 하여 궁극적 진리가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하고자 했다.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


  
《바가바드기타》는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아침저녁으로 낭송하는 경전이다.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유명한 인도의 성인 간디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바가바드기타》를 읽은 이후 평생 몸에 지니고 다니며 읽었다고 한다.     
    

 

만물은 공(空)하다.

《바가바드기타》는 《베다(Veda)》, 《우파니샤드(Upanisad)》와 함께 힌두교의 주요 경전이다. 이 세 가지 경전의 의의를 알려면 인도에서 종교와 철학의 역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황하 강, 이집트의 나일 강,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과 함께 세계 4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에는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인이 살았다. 드라비다인은 기원전 2000~3000년 사이에 계획된 도시에 살며 고대 문명을 이룩했다. 그러나 기원전 1300년경 아리아인들이 침공하여 드라비다인을 격파했다. 아리아인이 승리한 요인은 철기의 사용이었다. 드라비다인은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지만, 청동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리아인은 브라만교를 창립했고 이후 브라만교는 인도의 정통 종교로 자리 잡았다. 브라만교의 영향으로 인도 사회는 네 개의 신분으로 나누어졌다. 사제인 브라만, 귀족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수드라, 노예인 바이샤가 그것이다. 정복당한 드라비다인은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 브라만교라는 명칭은 사제인 브라만이 주도하는 종교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브라만교의 경전은 《베다》였다. ‘베다’는 산스크리트어로 ‘지식’ 또는 ‘지혜’를 뜻하는데 《베다》에는 브라만교의 교리와 종교의식이 담겨 있다.
     
브라만교의 기본 강령은 세 가지였다. 첫째, 《베다》는 신의 계시이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 둘째, 신에 대한 제사를 통해 재앙을 내쫓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브라만은 존귀한 신분이므로 최대한 존중받아야 한다. 이 3대 강령에서 알 수 있듯이 브라만교는 사제인 브라만이 주도하여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을 중시하는 종교였다. 그런데 브라만교는 붓다의 출현으로 타격을 입었다. 기원전 4~5세기경에 출현한 붓다는 자기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신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했다. 또한, 누구나 깨달은 자, 즉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신분 차이에 따른 차등을 배격하고 모든 인간은 대등하다고 했다.
     
붓다가 세상을 떠나고 500여 년이 지나 나가르주나((Nāgārjuna, 150?~250?)가 등장했다. 나가르주나는 한자로 ‘용수(龍樹)’라 한다. 나가르주나는 붓다의 가르침 중 연기설(緣起說)이 핵심이라면서 만물의 본성이 공이라 하여 충격을 주었다. 연기설은 만물이 서로 원인과 결과 관계로 연관되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서 이것이 있다. 따라서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다’는 것이 연기설의 기본 주장이다.
     
이렇듯 만물이 연기하여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므로 만물은 고유한 자기 본성이 없다. 나가르주나는 그 ‘본성 없음’을 공이라고 했다. 공은 숫자 0의 철학적 표현이다. 어떤 숫자에 0을 더하든 빼든 숫자의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0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1907에서 0은 십의 자리를 표현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은 ‘있음’과 ‘없음’을 포괄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를 숫자 1로 표현해보자. 나가르주나의 공사상은 1이 곧 0이고, 0이 곧 1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나가르주나의 철학은 철학사상 획기적인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만물의 근원을 원자라 했고 중국의 제자백가는 기라고 하여 창조자로서의 신을 부정했다. 만물이 원자 혹은 기에 의해 생겨나므로 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최초의 원자 혹은 기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신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나가르주나가 만물은 0에서 시작된다고 하자 신이 들어설 자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가르주나의 철학이 등장하자 브라만교의 교리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나가르주나가 개창한 대승불교는 인도 전역에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4~6세기에 인도를 지배한 굽타왕조는 불교를 국가적 종교로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브라만교는 급격히 쇠퇴하여 농촌에서나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브라만교 내에서 개혁이 일어났다. 브라만 중심의 브라만교를 대중 중심의 힌두교로 전환했다. 이 전환을 위한 철학적 기초가 필요했다. 그 일에 나선 사람이 샹카라(Śaṅkara, 700~750)였다. 샹카라는 《베다》가 아닌 《우파니샤드》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철학을 이룩했다.     
     


만물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파니샤드’라고 이름 붙여진 저술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누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대개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사이에 저술된 것을 진본이라고 한다. ‘우파니샤드’란 ‘가까이 앉는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의 가까이에 앉아 그 가르침을 듣는다는 의미다.
     
《우파니샤드》는 학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공자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기록한 《논어》와 상통하고 소크라테스가 여러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를 플라톤이 기록한 것과도 유사하다.
     
《우파니샤드》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 제1장에 세상 만물의 탄생과 관련한 세 가지 생각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생각을 보자. 
     
처음에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죽음과 굶주림만이 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왜냐하면, 죽음은 굶주림이기 때문이다. ‘나는 육체를 갖추게 될 것이다.’ 죽음은 이처럼 결심했다. 그래서 죽음은 찬가를 부르면서 갔다. 그 찬가를 부름으로 인하여 물이 생겨났다. (…) 죽음은 대지 위에서 수고했다. 그 수고에서 온 피로와 달아오른 열이 불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물과 불이 생겨났다고 했다. 세상 만물의 근원이 물과 불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만물의 근원을 원자나 기로 보는 것과 상통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 생각은 철학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준다. 이 경우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반면 창조주를 전제하는 생각이 있다. 
     
신들과 귀신들은 프라자파티의 자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신들은 연하이고, 악마들은 연상이었다. 이런 세계를 획득하려고 하여 그들은 다투었다.
     
프라자파티(Prajapati)가 선과 악 그리고 세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신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으로, 창조주를 인정하는 종교적인 생각이다. 이 경우, 인간의 행복과 구원은 종교의식을 통해 신을 제대로 섬김으로써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구원을 얻기 위해 궁극적 진리를 깨달으면 되는가? 아니면 종교의식을 통해 신을 제대로 섬겨야 하는가? 이 둘 사이에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생각을 마련했다.
     
최초로 인간의 모습을 한 아트만이 존재했다. 주위를 다 둘러보아도 자기 자신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그것은 무서웠다. (…) 그것은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 그것은 이 육신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생겨났다.
     
아트만(ātman)에게서 남편과 아내가 생겨났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에게서 자손이 나오듯이 아트만에게서 만물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이때 아트만을 신이라 하면 종교적인 사고가 되고, 아트만을 원자나 기라 하면 철학으로 나아가는 사고가 된다. 그래서 제3의 생각이 어느 쪽으로든 이해될 수 있게 했을 뿐, 논란을 종식할 수는 없었다. 그 논란의 과정을 《카타 우파니샤드》에서 다루었다.     
   

 

아트만은 브라만이다.

《카타 우파니샤드》에는 나치케타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나치케타의 아버지는 제사 때 쓸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았다. 그러자 나치케타가 아버지에게 “저는 누구에게 바치시려 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질문하자 귀찮아진 아버지는 “나는 너를 죽음의 신에게 바치겠다.”라고 말해버렸다. 아버지의 본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케타는 무작정 죽음의 신을 찾아갔다. 나치케타는 아직 죽음의 신에게 가야 할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죽음의 신은 나치케타에게 돌아가라며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나치케타는 아버지가 자신을 명랑하게 맞이하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제사를 관장하는 불의 신에 관해 물었다. 죽음의 신은 그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었다. 나치케타는 마지막으로 죽음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죽음의 신은 죽음의 문제는 매우 어려우니 묻지 말고, 부귀영화나 장수 같은 것을 요청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치케타는 그것을 거부하고 오직 죽음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결국, 죽음의 신은 “아트만을 알게 되면 죽음의 어귀에서 해방된다.”라고 말해주었다.
     
《카타 우파니샤드》는 나치케타의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를 이렇게 밝혔다.
     
죽음의 신에 의하여 알려진 태곳적 나치케타 설화를 말하고 듣는 현명한 사람은 브라만의 세계에서 기뻐한다. 브라만의 집회에서 혹은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 이 최고의 비밀스러운 《우파니샤드》를 들려주는 사람, 그를 도와 그것은 끝없는 효력을 지니게 한다. 그것은 끝없는 효력을 지니게 한다.
     
죽음의 신이 나치케타에게 알려준 것이 《우파니샤드》의 최고 비밀이라고 했다. 죽음의 신은 나치케타에게 아트만을 알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을 관장하는 죽음의 신이 직접 죽음을 부정한 것이다. 신이 직접 한 말이라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했다. 그리고 사제들에게 제사를 지낼 때 나치케타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했다. 나치케타 이야기의 의미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나치케타의 아버지는 신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반면 나치케타는 궁극적 진리를 알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카타 우파니샤드》에서는 종교의식보다 궁극적 진리를 깨닫는 일이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렇듯 《우파니샤드》는 궁극적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남인도 출신 샹카라는 《우파니샤드》를 기초로 하여 나가르주나의 철학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것은 인도의 종교적 주도권을 불교에서 힌두교로 가져오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나가르주나는 앞에서 서술했듯이 공 사상을 주장했다. 이에 맞서 샹카라는 ‘베단타(vedānta)’의 원리를 제시했다. 베단타는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데, 《우파니샤드》를 《베다》의 최종 결론으로 여겼기 때문에 ‘베단타’라고 했다.
     
샹카라가 주장하는 《우파니샤드》의 원리는 무엇인가? 《우파니샤드》는 세상 만물의 본성이자 궁극적 진리를 브라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아트만이라고 했다. 샹카라는 《우파니샤드》를 설명하면서 브라만과 아트만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브라만과 아트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샹카라의 철학을 ‘두 개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불이론(不二論)’이라고 한다.
     
샹카라의 불이론은 나가르주나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했다.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기 마음이 바로 아트만이라고 했다. 반면 샹카라는 세상 만물의 본성이 공이라는 나가르주나의 주장을 반박하여 세상 만물의 본성은 브라만이라고 했다.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이므로 아트만을 알면 세상 만물의 본성인 브라만을 알아 궁극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나가르주나의 논법을 활용하여 나가르주나의 사상을 논파하려 했던 것이었다.
     
샹카라의 철학은 나가르주나 철학에 맞선 최상의 반박 논리였다. 세상 만물의 본성이 공이라면 깨달음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 샹카라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자기 마음인 아트만을 알면 세상 만물의 본성이자 궁극적 진리인 브라만을 알 수 있다.
     
샹카라의 시도는 성공했다. 샹카라의 철학을 기초로 하여 브라만교는 힌두교로 전환했고, 불교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반론이 제기되었다. 힌두교를 더욱더 대중적인 종교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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