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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04. 2016

09. 살색은 어떤 색인가?

<미술, 세상을 바꾸다>

                                                

장 레옹 제롬, <목욕>, 1880~1885. 19세기 아카데미즘을 이끈 화가 제롬의 작품. 이들 중 누구의 피부색이 진짜 살색일까?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뉴저지의 한 화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도시 변두리의 화랑들이 흔히 그렇듯, 오리지널 작품보다는 명화를 복제한 포스터를 팔거나 손님이 가져오는 그림과 포스터 등을 액자에 넣어주는 일을 주로 했다. 

처음 석 달 정도는 화랑의 뒤편 공장에서 액자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 일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이제는 카운터로 나와 손님을 받으라고 했다. 장사 경험도 없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 손님이 오면 한눈에 그의 수준과 기호를 읽고 기분에 맞춰 구매를 유도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프레임 고르는 데만 두세 시간을 보내는 까다로운 손님도 많았다. 더구나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시기였다. 나는 거절했지만 주인은 “넌 잘할 수 있어. 미술사와 화가들에 대해 아는 게 많잖아. 평소 나와 얘기하듯이 대하면 돼. 손님들은 너 같은 아티스트와 얘기하는 걸 좋아해”라며 두꺼운 카탈로그를 건네줬다. 그것은 손님이 원하는 그림을 고를 수 있게 명화 포스터 견본을 모아둔 책이었다. 주인은 내 등을 두드리며 손님들은 보통 인상파 그림을 좋아하니, 그 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팁까지 주었다. 

결국 나는 카운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주인이 가르쳐준 대로 카탈로그에서 인상파 그림 쪽을 펼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곳은 뉴욕 시 변두리의 백인 중산층이 사는 지역이라 주로 백인 취향의 그림을 취급했는데, 인상파부터 시작하는 작전이 그런대로 잘 먹혔다. 

나는 거기서 마네, 모네로 시작하여 고흐, 고갱 등 후기인상파,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피카소 등의 입체파, 그리고 폴록과 워홀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역사가 백인들의 삶에 얼마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이와 문화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젊은 층은 모던 추상과 팝아트를 선호하는 반면 나이 지긋한 중산층들은 대개 인상파에서 마티스까지 그림을 좋아했다. 집의 벽이 허전해 적당한 그림을 찾으러 온 손님 대부분이 인상파나 후기인상파 그림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일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모네의 <수련>, 고흐의 <해바라기>와 <별이 빛나는 밤> 등 복제본을 수시로 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인은 백인미술, 흑인은 흑인미술,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며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가던 어느 날, 한 흑인 커플이 왔다. 이 동네로 이사 왔는데 벽에 걸 만한 그림을 소개해 달라는 거였다. 별생각 없이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인상파 그림들을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인상파를 안 좋아하나 싶어 카탈로그를 뒤지며 이것저것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좀 상기된 얼굴로 “블랙 아트는 없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때 ‘블랙 아트’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래서 블랙 아트가 뭐냐고 되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주인이 당황한 듯 내 옆구리를 찌르며 이 손님은 자기가 맡을 테니 다른 일을 하라고 속삭였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무도회>, 1876. 인상파 그림을 인종적 측면에서 보면 철저히 백인미술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당시 급변하는 파리 시의 인물과 풍물들을 그리는 데 열중했기 때문에 유색인이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네, <올랭피아>, 캔버스에 유채, 1865. 19세기까지 유럽의 그림에 유색인이 등장한다면, 그들은 주인공이 아닌 하인이나 노예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 주인은 “흑인 손님에게 백인미술을 보여주다니, 어쩌자는 거냐!”라는 꾸지람에서 시작해서 긴 강의를 늘어놓았다. 인상파 그림이 백인미술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쇠라, 세잔, 고흐는 모두 유럽 출신의 백인이고, 그들 그림 속 인물들도 모두 백인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인은 흑인에게 백인미술을 권하면 모욕감을 느껴 화를 낼 수도 있으니 특별히 주의하라고 했다. 흑인은 백인과 전혀 다른 감각과 기호를 갖고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며 블랙 아트 카탈로그를 꺼내서 보여줬다. 

코넬 반스, <최후의 만찬> 예수상이 흰 천을 두른 뒷모습으로 있고, 그 주위를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등 유명 흑인 지도자들이 둘러앉아 있다.


로매어 비어든, <거리>, 천과 종이 콜라주, 95.3x129.5cm, 1975.


제이콥 로렌스, <자화상>, 1977.


나는 그때 처음으로 흑인미술 카탈로그를 보았다. 흑인 작가가 흑인을 주인공으로 흑인의 생활과 환경을 그린 그림들이었다. 카탈로그에 실린 30~40명의 흑인 화가 중 내가 아는 작가라곤 로매어 비어든과 제이콥 로렌스 정도였다. 검은 얼굴, 검은 피부, 원색 계통의 의상, 남부의 가난한 집, 흑인 동네의 풍속, 그리고 흑인의 독특한 기호를 보이는 추상화 등의 그림들이 들어있었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아닌 코넬 반스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흑인 예수를 중심으로 맬컴 엑스, 마틴 루서 킹 등의 흑인 지도자들이 그려져 있었다. 흑인식으로 번안한 <최후의 만찬>인 것이다. 그 카탈로그에 있는 그림들은 내용과 표현 기법이 매우 소박했고, 서툰 솜씨로 그린 그림도 많았다. 

카탈로그의 마지막 장은 백인이 지배하는 미술계에 뛰어들어 흑인으로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장 미셸 바스키아가 장식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인상파가 백인미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백인미술과, 흑인미술이 따로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인상파미술은 유럽인의 미술이지 한국미술도 세계미술도 아니었다. 그저 백인 화가들이 그들의 도시 생활을 그린 그림이었다. 결국 서양미술은 백인들의 미술이었고, 이는 아시아의 미술도, 한국의 미술도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배움으로 얻은 미술 지식과 감각, 혹은 가치의 대부분이 서구의 백인문화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미학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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