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정약용이 말하는 '공부가 안되는 이유'

<현대인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by 더굿북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큰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하루에 백번 천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릇 책을 읽는 도중에 의미를 모르는 글자를 만나면 그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해서 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의리(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느니 이점 깊이 명심해라.

_ ‘사대부가 살아가는 도리’ 기유아(寄遊兒),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공부의 신’ 정약용은 아들과 제자들에게 공부의 순서에 대해서도 별도로 당부했다. “당장 필요하고 쓰임이 확실하다고 해서 과문(科文)부터 보지 말고 고문(古文)부터 시작하라”고 했는데, 이는 원리를 완전히 깨치면 응용은 쉽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말을 곰곰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학생들도 어떤 공부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가령, 어렸을 때는 어떤 과목의 공부를 먼저 하는 게 좋을까? 수학이 어렵다고 하니 수학부터 해야 할까? 아니다. 답은 책 읽기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명확해진다. 이 시기부터 아이들은 서술형 수학문제를 푸는 데 애를 먹기 시작한다. 문제가 세 줄 정도만 되면 읽기를 포기해버리는 예도 있다.

이러한 성향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져서 수학 선생님들조차도 ‘수학 실력의 절반은 국어 실력’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수학 실력보다 잘 안 느는 것이 국어 실력이다. 어렸을 때 책 읽기도 만화책(학습만화도 마찬가지다)을 주로 읽고 고전을 잘 읽지 않으면, 짧은 글에는 강하지만 긴 글을 읽으면서 큰 주제를 살피는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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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원리부터 깨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학원을 많이 다녀도 성적이 더는 오르지 않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혼자 공부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모든 공부는 핵심 개념의 연결과 복합적 사용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인문학적으로 올바르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책은 읽은 권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독(多讀)보다 정독(精讀)이 더 중요하다. 읽는 동안 두뇌를 어떻게 쓰면서 읽었느냐, 아니면 그냥 줄만 따라 읽었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또 읽고 나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거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더 풀어보았는가에 따라서도 성과는 크게 달라진다. 이는 성인들의 독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인들도 대부분 학생 때부터 선행학습과 독서 숙제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책을 읽거나 고전을 깊이 있게 읽고 음미하는 격물치지의 경험을 할 기회가 적었다. 당연히 책 읽기의 즐거움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직장인이 되어서도 책 읽기를 단순히 취미로 여기거나 아예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책 읽는 즐거움과 공부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성인이라면 독서를 할 때 먼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교양과 흥미를 위한 독서인지, 학습을 위한 것인지부터 분명히 정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한 독서를 한다면, 이때에는 책에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한 뒤 책을 고르고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빅데이터에 관한 책을 읽으려 한다면 내가 빅데이터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막연하게 ‘빅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보다는 ‘빅데이터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빅데이터가 비즈니스에 적용되는 원리’와 같이 더욱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야 책을 읽는 재미도 배가된다. 그뿐만 아니라 독서의 목적이 분명할수록 수많은 책 중에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책을 고르기도 쉽다.

요즘 소프트웨어 개발자뿐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들도 코딩 배우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관련 책도 많이 읽는데 이럴 때도 막연히 코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생각만 하고 읽지 말고, 내가 스마트폰 앱을 만든다면 어떤 앱을 만들지 머릿속에 그린 후 읽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한 독서라면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읽어야 책장만 넘기는 수동적인 독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독서의 재미를 느끼고 공부의 참맛을 알아갈 수 있다.

그다음에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나만의 방법을 가져야 한다. 독서 노트가 될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기록하는 식도 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격물치지를 배우는 셈이다. 이것은 두뇌가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두뇌 활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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