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자본의 힘>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신(名臣)들은 모두 스토리텔링의 고수였다. 황제가 책략가에게 의견을 구할 때 대부분의 지혜로운 신하들은 이야기를 통해 황제의 관심을 끌고, 마지막에는 황제 스스로가 그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게 만든다. 이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활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은 대신들이 즐겨 썼던 방법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이 훌륭한 이야기 자본 역시도 학식이 있어야 축적할 수 있다.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말이나 칭찬하는 말을 싫어하는 황제는 없다. 반면, 비판이나 이견을 제시하면 기분이 나쁘다. 성군이었던 당나라 태종(太宗) 역시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의견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만약 군주가 아량이 없거나 우매하다면 신하가 그 군주를 찾아가 이치를 논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이런 군주와 신하는 적지 않은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주왕(紂王)의 숙부 비간(比干)이다. 그는 이야기를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사실 스토리텔링이란 일종의 수양이자 공부다. 당신이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스토리텔링 전략을 쓴다면 상대가 제아무리 우매한 군주라도 놀라운 결과가 펼쳐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행운이 따랐던 인물이 바로 추기(鄒忌)다. 그는 군주에게 스토리텔링 전략을 쓰고 자신의 목숨을 보전한 인물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인 추기는 제나라의 위왕(威王)이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언로(言路)를 열길 바라는 마음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이시여, 제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얼마 전 제가 옷을 차려입고 조정에 들기 전 거울을 보며 제 처에게 물었습니다.
“나와 서공(徐公) 중에 누가 더 잘생겼소?”
제 처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물론 당신이 더 잘생겼지요. 어찌 서공을 당신과 비교하겠습니까?”
저는 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공이 미남인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몸종에게도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몸종 역시 처와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튿날, 저희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 손님 역시 제가 서공보다 잘생겼다고 답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서공이 저희 집에 왔습니다. 그때 서공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그는 분명 저보다 미남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줄곧 그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저와 서공의 외모가 아니라, 제가 제 처와 몸종, 그리고 손님에게 더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 모두 제게 바라는 것이 있기에 제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아첨하기에 바빴던 것입니다.
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제나라처럼 큰 나라에서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 중 그 누가 군주이신 전하를 두둔하지 않겠습니까?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이 군주를 두려워하고, 이 나라 백성 모두가 군주의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다들 아첨하려고만 할 것입니다. 그들이 군주 앞에서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군주께서는 기만당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군주께서는 만나는 사람이 많으니 기만당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만약 군주께서 진실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분명 국가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제나라 위왕은 추기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 즉시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 짐의 단점과 과오를 지적하는 자에게는 상상(上賞)을 내릴 것이고, 상소를 올려 짐에게 진언을 하는 자에게는 중상(中賞)을 내릴 것이며, 조정이나 거리에서 짐의 과오를 논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자에게는 하상(下賞)을 내릴 것이다.”
위왕의 명이 떨어지자 대신들은 하나둘씩 진언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순간 조정은 진언을 올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추기는 직접적으로 위왕의 단점을 꼬집지 않고, 이야기를 활용해 진언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추기가 쓴 방법은 가히 스토리텔링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다. 진언이라는 목적도 달성하고, 군주의 체면도 지켜낸 지혜로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