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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3. 2016

01. 베트남은 예금보다 금고를 더 좋아한다.

<글로벌 금융 탐방기>

베트남인은 예금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일단 다 쓰고 보는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은행에 예금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전쟁을 치러왔기에 전쟁이 일어나면 자국 화폐의 가치는 언제든 휴지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는 정부가 그 가치를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거래되는 것인데, 그 정부가 전쟁에서 질 수도 있으니까요. 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쓰고 빚이 많아지면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되니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통 전쟁이 일어나거나 사회에 혼란이 있을 때는 믿을 수 있는 다른 나라의 화폐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금이나 보석을 선호합니다.
     
또한,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로 통일되자, 공산당에서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던 예금을 모두 압수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부와 금융기관, 국민 사이에서도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요. 한번 틀어진 금융에 대한 신뢰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못한 것이지요.
     
게다가 그동안 베트남 경제가 좋지 못했기에 베트남 화폐인 ‘동(Dong)’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져 왔습니다. 1993년에 1달러에 1만 동이었는데, 20년 동안 단 한 번도 강해지지 못하고 꾸준히 약해져서 2016년 현재 1달러에 2.2만 동이 되었습니다. 동화를 은행에 맡겨놓고 이자를 받는 것보다 동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폭이 더 크기 때문에 동화를 달러화로 환전해서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 있는 투자자뿐만 아니라 국민조차 언제 가치가 폭락할지 모를 동화보다 달러화를 선호하기에 동화의 가치가 꾸준히 떨어진 것이었죠.
     
베트남에서는 상점에서 달러를 받는 것이 공식적으로 불법이기에 상점에 표기된 가격은 베트남 동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택시를 타든 물건을 사든 달러를 받았고, 때때로 동으로 받기보다 달러를 요구하는 예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기관과 국민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 대부분 은행 거래를 하고, 좀처럼 집에 금고를 들이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 금고는 정말 엄청난 부자가 쓰거나 무언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획득하고 이를 숨기고자 할 때 사용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베트남에서는 개인 금고가 잘 팔려서 집마다 한 개씩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 한국의 ‘건가드’라는 회사의 금고가 인기였습니다.)
    

시내에 줄지어 있는 금고 가게


 
저는 금고를 쓸 일이 없었기에 어떤 금고가 좋은 것인지, 열기 힘들게 만든 것이 좋은 금고인지 궁금했는데요. 베트남 지인께서는 열기 어려운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도둑이 들고 도망가기 어려울 만큼 금고가 아주 무거워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보통 두 명이 들어도 못 들 정도로 무겁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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