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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09. 2016

04. 이세돌을 특별하게 만든 두 가지

<학력파괴자들>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절대로 최고가 될 수 없다.” 
_ 조훈현 9단

신안 앞바다에 흩뿌려져 있는 수백 개의 섬, 그 속에 새가 나는 모양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비금도’가 있다. 고작해야 300호를 헤아릴 정도의 농가가 있고 배편도 하루 한 번밖에 없는 이 섬에서 바닷가를 놀이터로 뛰놀던 섬 소년은 도시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듯 바둑에 빠져들었다. ‘쎈돌’ 이세돌의 이야기다. 그는 다섯 살 코흘리개 꼬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바둑 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았다. 학교 수업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고, 오로지 가로세로 19줄짜리 바둑판 세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만 연구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고시 합격보다 힘들다는 프로바둑 기사 입단에 성공했고, 28세까지 13회에 걸쳐 세계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4년까지 올린 상금 총액은 약 80억 원. 수읽기에 빠르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독창적인 수를 둔다고 평가받으며 ‘조훈현 이후 최고의 바둑 천재’라는 찬사를 들음에도 정작 본인은 천재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실력 뒤에는 학업마저 버리고 한 분야만 파고든 치열한 노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을 특별하게 만든 두 가지

“네 바둑이 늘지 않는 이유를 알려줄까? 너무 규칙과 사례에 얽매여 있어. 당연히 수는 연구하고 학습해야 하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바둑이 그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겠니”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격식을 깨야 하는 거야. 파격이지. 격식을 깨지 않으면 고수가 될 수 없어.” 
_ 드라마 〈미생〉에서
   
이세돌은 야생마 같은 행보만큼 바둑에서도 틀 없는 자유로움과 모험을 즐긴다. 그래서 그의 바둑은 자신감이 넘치고 공격적이며 창의적이다. 세돌은 말한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은 틀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틀을 배운 바도 없고요.”
   
세돌이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들은 기간은 모두 합해도 2년이 채 안 될 것이다. 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이세돌이 어떤 점에서 다른 학생들과 다를 수 있었는지 그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세돌은 분명 얌전한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다. 저돌적인 성격, 자유로운 발상과 예측불허의 과감함을 가진 그는 오히려 반항아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학교처럼 획일적인 교육체계에서는 그의 담대한 배짱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독특한 발상도 키워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인 권노갑 사범은 이런 세돌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준 것일까?
     
권 사범은 먼저 관심을 두고 제자들을 지켜보며 각각의 스타일과 개성을 파악한 뒤 그에 맞춰 가르쳤다. 세돌은 붙들어 매어두는 게 독이 되는 스타일이었다. 그 점을 파악한 권 사범은 그를 자유롭게 풀어준 뒤 스스로 하나씩 터득해가도록 배려했다. 세돌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수업이라면 듣지 않아도 간섭하지 않았고, 세돌이 필요로 하는 것만 알려주며 실전 위주로 스스로 공부하게 했다.
     
훈육 시에도 권 사범은 그의 특성을 깊이 고려했다. 세돌처럼 자존심이 센 아이들은 일방적으로 지시하며 몰고 가거나 문제점을 지적받으면 그 내용을 차분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권 사범은 그런 성향을 고려해 세돌이 가끔 엇나갈 때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기다렸고, 세돌은 혼자 힘으로 문제를 깨달은 뒤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연세대 철학과 김형철 교수는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런 점에서 세돌은 권 사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할 수 있다.
     
세돌이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달랐던 또 한 가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 대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궁금한 것을 알아내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가족들을 귀찮게 할 때가 많았고, 책을 읽을 때도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 사람은 왜 그랬을까?’,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식의 질문을 계속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그는 요즘 바둑 배우는 아이들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이들이 사범의 설명을 잠자코 들으면서 그저 고개만 끄떡거릴 뿐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수동적으로 자라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것은 비단 초등학생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조차 우리나라에서는 질문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고, 궁금한 점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는다는 학생의 비율은 70%에 달한다고 한다. 질문도 대답도 사라진 이상한 강의실, 강의 내용을 듣고 적기만 하는 데다 취업만을 고민하는 학생들로 인해 대학은 지성이 아닌 침묵의 전당이 되어버렸다. 

이세돌은 “질문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자기만의 바둑 스타일을 만들기가 어렵고, 가르쳐주는 사람의 틀에 갇히기 쉽다.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그것을 밝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스스로 확립해나갈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비단 바둑의 세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후에는 집중해서 전력투구하라는 것이다. 흥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할 일에 어설프게 매달려 낭비할 만큼 우리가 가진 시간이 무궁무진한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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