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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1. 2016

01. 인류가 종말을 맞는 최상의 방법은?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최상’의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최악의 경우부터 시작해보자. 문명의 재건이란 관점에서 볼 때, 최악의 참사는 전면적인 핵전쟁일 것이다. 표적이 된 도시에서 살다가 목숨을 건지더라도 현대 세계를 떠받치는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일 것이다. 게다가 하늘은 흙먼지로 뒤덮이고, 땅은 낙진으로 오염되어 농업의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질량방출(Coronal mass ejection)  

태양에서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코로나질량방출(Coronal mass ejection)도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낙진 못지않게 나쁘다. 유난히 격렬한 태양 폭풍이 지구 주위의 자기장을 때리면 지구가 종처럼 울리며 전선에 엄청난 양의 전류를 유도해서 지구 전역에서 변압기가 터지고 전력 공급이 중단될 것이다. 이런 정전 사태로 수돗물과 가스의 공급이 중단될 것이다. 물론 연료도 더는 정제할 수 없을 것이고, 교체할 변압기도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현대문명을 떠받치는 핵심적인 기반시설이 파괴되면 인간의 생명이 즉각적으로 위협받지는 않더라도 곧바로 사회질서 붕괴가 뒤따르고, 군중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남은 물자를 급속히 소비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 것이고, 종국에는 살아남은 생존자들만이 썰렁한 세상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어떤 자원도 없는 세계여서 회복을 위한 유예기간조차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종말 후의 세계를 묘사한 영화와 소설에는 이런 극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산업 문명이 붕괴하고 사회질서가 파괴되어 생존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정반대의 장면을 집중적으로 다루어보려 한다. 다시 말하면,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현재 테크놀로지 문명의 물질적인 기반시설은 그대로 남겨진 경우를 뜻한다. 
     
대다수 인간이 죽음을 맞았어도 여전히 모든 물건이 주변에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문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신속하게 재건하는 방법에 대한 사고실험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생존자들이 자급자족 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다시 배우기도 전에 급격히 타락하는 걸 방지하는 동시에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한 유예기간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가장 극적인 방법은 ‘판데믹(Pandemic, 세계적인 유행병)의 공격이 급속히 일어나는 것이다. 높은 전염력, 오랜 잠복기, 거의 100%에 가까운 치사율이 복합된 전염병이라면 완벽한 바이러스 폭풍이다. 이런 종말의 매개체는 극단적으로 신속하게 전염되지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감염된 사람들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병원균을 옮기는 숙주 역할을 하며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맞는다. 
     
2008년 이후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시골 지역보다 도시에서 살고 있어, 우리는 어느덧 도시종(Urban species)이 되었다.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도 빈번해진 데다 과밀한 인구밀도로 인해 전염병이 급속히 퍼지기에는 안성맞춤인 조건이다. 예컨대 1340년대에 유럽 인구의 3분의 1과 아시아에서도 거의 비슷한 비율의 인구를 휩쓸어버린 흑사병 같은 역병이 오늘날 다시 닥친다면, 현재의 테크놀로지 문명은 당시만큼 신속하게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생존자들이 보여 주는 두 극단적인 모습을 〈매드 맥스〉형과 《나는 전설이다》형이라고 가정해보자. 코로나질량방출 같은 요인으로 인해 테크놀로지에 의존한 삶의 방식이 무너지지만, 인구가 즉각적으로 감소하지 않으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며 남은 자원을 급속히 소비할 것이다. 따라서 유예기간이 헛되이 허비되어, 사회는 〈매드 맥스〉형 같은 야만의 상태로 전락할 것이다. 그 결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사회질서가 신속히 회복되리라는 희망도 거의 남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당신이 세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오메가 맨’)이거나, 곳곳에 흩어져 서로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수의 생존자 중 한 명이라면, 문명을 다시 건설한다거나 원래의 인구를 회복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인류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아, 오메가 맨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그가 죽으면 인류도 결국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상황이 그렇다.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두 명의 생존자가 종의 지속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겨우 두 명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과 장기적인 생존력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 이론적으로 인구가 다시 번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예컨대 동폴리네시아에서 뗏목을 타고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한 개척자는 몇 명이었을까? 현재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마오리족의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을 분석하면 그 수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해보면, 개척단의 실질적인 규모에서 여성은 약 70명에 불과했으리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전체 인원수는 두 배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았던 15,000년 전에 동아시아에서 베링육교(Bering land bridge)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온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도 거의 비슷한 규모였을 것이라고 유전자 분석을 통해 추정된다. 따라서 종말 후에 세상 곳곳에 사람들이 다시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한 곳에 적어도 수백 명의 남녀가 있어야 한다.
     
인구가 매년 2%씩 성장한다면, 이런 규모의 집단이 산업혁명 시대의 인구 규모까지 회복하는 데 무려 8세기가 걸린다는 게 문제이다. 그런데 농업이 산업화하고 의학이 현대 수준으로 발달한 후에도 세계 인구의 증가율은 2%를 넘지 못했다. 따라서 수백 명이란 인구는 첨단 테크놀로지 제품의 생산은 말할 것도 없고 안정적인 경작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이다. 호구지책에 연연하며 수렵채집 시대의 생활방식으로 서서히 퇴보할 것이다. 하기야 인류는 탄생 이후로 거의 모든 시기를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수렵채집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는 생활방식이며, 다시 벗어나기 힘든 덫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지경까지 퇴보하는 걸 피할 수 있을까?
     
살아남은 집단은 많은 인력을 밭에 투입해서 적정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지만,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고 과거의 테크놀로지들을 되살리는 데도 적잖은 사람을 투입해야 한다. 가능한 한 최적의 재출발을 위해서는 원시 상태로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에 충분한 집단 지식을 형성하고, 다양한 재주를 지닌 생존자들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한 지역에 약 1만 명이 생존해서 한 곳에 모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이좋게 협력해서 살아간다면, 이런 사고실험의 이상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1만 명은 영국 인구의 0.01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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