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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1. 2016

02. 인간-기계 무기시스템

<사이보그 시티즌>

《남성의 환상(Male Fantasies)》에서 클라우스 테벨라이트(Klaus Theweleit)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우파의 준군사조직이던 프라이코프에 들어가 싸운 독일군 참전용사들의 심리 상태를 조사했다. 그는 참전용사들 가운데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등장했음을 알렸다. 그들은 기계화에 대하여 매우 에로틱하고 양면적인 관계를 맺은 유형의 인간들이었다. 

     
테벨라이트는 이 새로운 인간을 ‘체형은 기계화되고, 정신은 제거되거나 단단한 방탄복 안으로 쫓겨 자리한 생명체’로 간주한다. 이런 자기-기계화는 군인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분 좋은 기능을 수행한다.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행동을 발산하도록 허용해준 것이다. 테벨라이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기계적 갱생 배후의 핵심 충동은 발산을 바라는 욕망인 것 같다. 그리고 발산은 총체화된 기계와 이것의 구성요소들이 전장에서 폭발할 때 성취된다.”
   
정말이지 잔혹한 카타르시스이고, 살아 있는 기계인 병사나 군대의 자체 내장형 퇴출작용인 셈이다. 이 비유는 세월이 흐르면서 외려 말 그대로 사실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인간-기계 시스템은 운영 연구(Operations research, 시스템이나 조직운영의 개선에 관한 최적의 해답을 제공하는 과학적인 기법-옮긴이)와 과학적 관리법의 실행을 통해 제도화되었고, 그 뒤로 컴퓨터에 의해 결정적으로 변화했다. 
     
포스트모던적인 군대에서 인공두뇌학은 지배적 은유이며, 컴퓨터는 가장 중요한 전력 증강자이고, 사이보그는 인간-기계 무기의 이상(理想)이다. 군대는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 군인들을 사이보그로 변모시킨다. 이미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으며, 이제 정보는 전면 유리, 마스크, 심지어 무기 조작자의 눈에 직접 표시된다. 
     
가상현실이라는 분야는 바로 이 연구에서 파생된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전쟁이라는 극히 치명적인 전쟁에서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도록 병사들을 탈바꿈하는 정신의약적인 개조 방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들도 있다. 원격제어복(Exoskeleton)을 착용한 보병들을 위해 마음-컴퓨터 간 직통 교신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도 있다. 이 기술은 탱크 운전병, 잠수함 조타수, 항공기 조종사 등에게도 적용된다.
    

 
이러한 기술적 개입은 전투에서 평화유지로, 전사에서 경영자 겸 기술자로 초점이 전환되는 시류와 더불어 군인들 자체의 사회적 구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중에서도 특히 젠더적 측면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군인들이 점점 사이보그가 되어갈수록 그들 젠더의 정체성 또한 변화한다. 일반적인 사이보그들은 남성이거나 여성일 수 있고, 물론 둘 다이거나 중성이거나 아예 새로운 무엇일 수도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사이보그일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다. 
     
반면 군대의 사이보그들은 우리의 문화코드 안에서 여전히 꽤 남성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군인들은 기술자들이기 때문에, 군인의 새로운 정체성인 ‘남성다움’은 물리적 힘의 행사자로서 폭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른 남성과 모든 여성을 직접 복속시키는 자라는 전통적인 남성의 역할보다는, 기계를 고치고 기계와 함께 작업하는 등의 기계화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낡은 남성적 범주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남성’의 유형에 적응하기는 비교적 쉬워 보인다. 여성 병사의 정체성이 일반 군인의 페르소나로 와해한 것처럼, 복장과 몸짓은 모호하게 남자이고 지위는 모호하게 여자이며, 역할과 이미지는 모호하게 남성-기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미군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이보그화되어 있으며, 이 점은 포스트모던 전쟁의 수많은 정치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군대 내 여성과 남성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분쟁들, 조금의 사상자도 원하지 않는 군대와 정치 지도자들의 저항, 결과적으로 최첨단 반자동 무기들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살상 역할을 직접 맡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군 인력을 무수히 많은 기술적 특수 분과들로 세분화하는 조치 등이 그런 위기에 해당한다. 조만간 벌어질 분쟁들은 군인의 정체성 혼란과 포스트모던적인 인간-기계 무기 시스템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백일하에 드러낼 것이다.
     
정체성 혼란과 기술적으로 정교해진 전문 직업군대에 대한 의존성 심화 그리고 포스트모던 전쟁 그 자체의 불안정성은 시민사회와 군사영역 간의 간격을 더 넓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세기의 많은 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별개의 목표와 세계관을 가진 군대조직에 의해 타파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추세는 계속되고 있으며, 북미와 유럽의 민주국가들이라고 해서 이런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래의 사이보그 군인들을 다룬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Heinlein)의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에서는 오로지 참전용사들만이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미래 분쟁의 끔찍한 잠재력을 고려할 때, 일부 군인들과 군사 지도자들이 확실히 분별력과 공평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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