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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셋이서 섬으로

<112일간의 엄마>

by 더굿북

12월 막바지. 항암제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래도 나오는 “맞고 싶다”고 했다. 병원 측에선 “통증 완화 치료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느냐”라는 이야기가 수차례 나왔다. 효과 없는 항암제를 맞고 그만큼 부작용에 시달리느니 고통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다만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했다.


나오는 모자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모자 밑으로 짧은 머리카락이 엿보였지만 그건 가발이었다. 극심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나오는 단 한 번도 슬프다거나 괴롭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보다 주변 사람이 힘들지.”
이것이 나오의 입버릇이었다.

이 무렵 우리 셋을 지탱해준 것 중 하나가 다케토미 섬 여행이었다. 다케토미 섬은 오키나와의 야에야마 제도 중 하나로, 이시가키 섬에서 고속정高速艇으로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둘레가 10킬로미터가 안 되는 이 작은 섬은 고운 별모래로 둘러싸여 있고 집들의 지붕은 이 지방 특유의 빨간 기와로 이어져 있다.

나오하고도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ten.」 일로 바쁘고 해서 때를 놓친 참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다케토미 섬은 우리 둘 사이에 종종 화제로 떠올랐었다.

나오를 데려가고 싶다. 그곳의 경치를 보여주고 싶다. 나오의 병이 발견되고부터 내 안에선 그 생각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치료 과정이며 나오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좀처럼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가까운 곳에 잠깐 다녀오는 것과는 문제가 다르다. 비행기와 배를 이용하는 장거리 여행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전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모험에 나섰다. 연말연시 휴가를 이용해 다케토미 섬에 가기로 결심했다. 갈 때마다 묵었던 단골 료칸에 곧바로 연락해 우리 세 사람분의 방을 예약했다.

“나오, 우리 셋이 다케토미 섬에 가자!”
“응.”
“꼭 가는 거야.”
“응, 나, 힘낼게요.”

나오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나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여행은 가당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셋이 살아가겠노라 마음먹은 터였다. 셋이서 살아가려면 ‘희망’이 필요했다. 다케토미 섬 여행은 나와 나오의 한 가지 희망이었다.

나 자신이 그 희망에 매달리고 있었다. ‘희망’을 갖지 않으면 TV 카메라 앞에 설 수 없는 상태였다.


다케토미 섬, 행복한 순간

2014년 12월 28일. 여행 전날. 나오는 병원 침대에 있었다. 그 전날부터 열이 내리지 않는 데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27일 밤에 “어떡할까?” 하고 묻자, 열이 펄펄 나는데도 나오는 분명하게 말했다.

“가야지.”

사실 나는 나오 모르게 다케토미 섬 료칸에 전화를 걸어 어쩌면 예약을 갑자기 취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이날 병원에 온 참이었다.

항생제 점적과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사흘간 연속으로 맞았다. ‘갈 수 있다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나나 오사카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이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오의 담당 의사인 기무라 선생님은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의 상태를 보러 와주었다.

그리고 혈액검사. 이제 와 생각하면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모든 수치가 안정권에 들고 최악의 상태는 벗어난 듯했다. 오사카 병원의 의사 선생님도 “국내 여행이라면 괜찮을 겁니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오키나와 병원에도 연락을 취해주었다.

12월 29일. 나오와 나, 아들까지 우리 세 사람은 간사이 국제공항에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시가키 섬까지 2시간 반 동안 비행이다. 나오는 유모차로 몸을 지탱하면서 탑승구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 유모차는 사실 나오가 고집해서 고른 것이었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고른 버기형.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비행기는 투명한 바다를 스치듯이 지나쳐 이시가키 공항에 착륙했다. 우리 세 식구의 첫 여행이었다. 나오도 불안했을 테지. 공항에 내리자마자 장모님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신 이시가키 공항에서 이시가키항 낙도 터미널까지는 택시로, 그리고 고속정 탑승. 나오의 몸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문제없다.

다케토미 섬에 도착하여 료칸에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나는 나오를 부추겼다.

“바다로 나가자!”
“응.”

목적지는 곤도이 해변. 끝없이 이어진 하얀 모래사장과 그 맞은편에 펼쳐진 얕은 바다. 평소엔 에메랄드그린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마침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받아 옅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부셔.”

나오가 실눈을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 달간 거의 병실에서 지냈고, 집에 돌아와서도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어 실내에서만 생활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연의 빛. 그 얼굴은 빛나고 눈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아들을 품에 꼭 안은 채 걸었다.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던 나오가, 걷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나오가, 자신의 팔로 아들을 안고 걸었다.

“햇살이 기분 좋네. 그런데 애가 타겠다, 피부가 하얘서.”
“뭐 어때, 사내아이인걸.”
“안, 돼(웃음). 볕에 타지 않게, 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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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오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기념으로 구입한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로 오로지 나오를 좇았다. 파인더 속 나오는 내가 놀랄 정도로 웃는 낯을 보였다. 부드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엄마의 얼굴이다.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섞였다.

“나오, 춥지 않아?”
“응, 괜찮아요.”
“기분 좋다.”

나오는 아들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볼을 비볐다. 마치 자신의 감촉을 새겨 넣기라도 하는 듯이.

“오길 잘했다.”

나오가 웃음으로 답했다.

“응.”
“아, 진짜 기분 좋다.”
“이게 켄 씨가 좋아하는 경치구나.”
“응. 나오랑 우리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경치야.”
“고마워요…….”

곤도이 해변에는 우리 세 식구밖에 없었다. 나오. 나. 그리고 아들. 우리 독차지였다.

“좋아, 바다를 배경으로 셋이서 사진 찍자.”

나는 셀프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셔터가 내려간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도려냈다. 사진 속에 ‘순간’을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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