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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4. 2016

07. 셋이서 섬으로

<112일간의 엄마>

12월 막바지. 항암제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래도 나오는 “맞고 싶다”고 했다. 병원 측에선 “통증 완화 치료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느냐”라는 이야기가 수차례 나왔다. 효과 없는 항암제를 맞고 그만큼 부작용에 시달리느니 고통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다만 그것은 ‘마지막’을 의미했다.


나오는 모자를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였다. 모자 밑으로 짧은 머리카락이 엿보였지만 그건 가발이었다. 극심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나오는 단 한 번도 슬프다거나 괴롭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보다 주변 사람이 힘들지.”
이것이 나오의 입버릇이었다.

이 무렵 우리 셋을 지탱해준 것 중 하나가 다케토미 섬 여행이었다. 다케토미 섬은 오키나와의 야에야마 제도 중 하나로, 이시가키 섬에서 고속정高速艇으로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둘레가 10킬로미터가 안 되는 이 작은 섬은 고운 별모래로 둘러싸여 있고 집들의 지붕은 이 지방 특유의 빨간 기와로 이어져 있다.

나오하고도 같이 가보고 싶었는데 「ten.」 일로 바쁘고 해서 때를 놓친 참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다케토미 섬은 우리 둘 사이에 종종 화제로 떠올랐었다.

나오를 데려가고 싶다. 그곳의 경치를 보여주고 싶다. 나오의 병이 발견되고부터 내 안에선 그 생각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치료 과정이며 나오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좀처럼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가까운 곳에 잠깐 다녀오는 것과는 문제가 다르다. 비행기와 배를 이용하는 장거리 여행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전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모험에 나섰다. 연말연시 휴가를 이용해 다케토미 섬에 가기로 결심했다. 갈 때마다 묵었던 단골 료칸에 곧바로 연락해 우리 세 사람분의 방을 예약했다.

“나오, 우리 셋이 다케토미 섬에 가자!”
“응.”
“꼭 가는 거야.”
“응, 나, 힘낼게요.”

나오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나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여행은 가당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셋이 살아가겠노라 마음먹은 터였다. 셋이서 살아가려면 ‘희망’이 필요했다. 다케토미 섬 여행은 나와 나오의 한 가지 희망이었다.

나 자신이 그 희망에 매달리고 있었다. ‘희망’을 갖지 않으면 TV 카메라 앞에 설 수 없는 상태였다.


다케토미 섬, 행복한 순간

2014년 12월 28일. 여행 전날. 나오는 병원 침대에 있었다. 그 전날부터 열이 내리지 않는 데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27일 밤에 “어떡할까?” 하고 묻자, 열이 펄펄 나는데도 나오는 분명하게 말했다.

“가야지.”

사실 나는 나오 모르게 다케토미 섬 료칸에 전화를 걸어 어쩌면 예약을 갑자기 취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이날 병원에 온 참이었다.

항생제 점적과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사흘간 연속으로 맞았다. ‘갈 수 있다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나나 오사카 병원의 의사 선생님들이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오의 담당 의사인 기무라 선생님은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의 상태를 보러 와주었다.

그리고 혈액검사. 이제 와 생각하면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모든 수치가 안정권에 들고 최악의 상태는 벗어난 듯했다. 오사카 병원의 의사 선생님도 “국내 여행이라면 괜찮을 겁니다”라는 판단을 내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오키나와 병원에도 연락을 취해주었다.

12월 29일. 나오와 나, 아들까지 우리 세 사람은 간사이 국제공항에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시가키 섬까지 2시간 반 동안 비행이다. 나오는 유모차로 몸을 지탱하면서 탑승구까지 천천히 걸었다. 이 유모차는 사실 나오가 고집해서 고른 것이었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고른 버기형.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비행기는 투명한 바다를 스치듯이 지나쳐 이시가키 공항에 착륙했다. 우리 세 식구의 첫 여행이었다. 나오도 불안했을 테지. 공항에 내리자마자 장모님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신 이시가키 공항에서 이시가키항 낙도 터미널까지는 택시로, 그리고 고속정 탑승. 나오의 몸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문제없다.

다케토미 섬에 도착하여 료칸에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나는 나오를 부추겼다.

“바다로 나가자!”
“응.”

목적지는 곤도이 해변. 끝없이 이어진 하얀 모래사장과 그 맞은편에 펼쳐진 얕은 바다. 평소엔 에메랄드그린빛으로 빛나는 바다가 마침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받아 옅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눈부셔.”

나오가 실눈을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 달간 거의 병실에서 지냈고, 집에 돌아와서도 세균 감염의 우려가 있어 실내에서만 생활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연의 빛. 그 얼굴은 빛나고 눈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아들을 품에 꼭 안은 채 걸었다.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던 나오가, 걷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나오가, 자신의 팔로 아들을 안고 걸었다.

“햇살이 기분 좋네. 그런데 애가 타겠다, 피부가 하얘서.”
“뭐 어때, 사내아이인걸.”
“안, 돼(웃음). 볕에 타지 않게, 타지 않게…….”


나는 나오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기념으로 구입한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로 오로지 나오를 좇았다. 파인더 속 나오는 내가 놀랄 정도로 웃는 낯을 보였다. 부드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한 엄마의 얼굴이다.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섞였다.

“나오, 춥지 않아?”
“응, 괜찮아요.”
“기분 좋다.”

나오는 아들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볼을 비볐다. 마치 자신의 감촉을 새겨 넣기라도 하는 듯이.

“오길 잘했다.”

나오가 웃음으로 답했다.

“응.”
“아, 진짜 기분 좋다.”
“이게 켄 씨가 좋아하는 경치구나.”
“응. 나오랑 우리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경치야.”
“고마워요…….”

곤도이 해변에는 우리 세 식구밖에 없었다. 나오. 나. 그리고 아들. 우리 독차지였다.

“좋아, 바다를 배경으로 셋이서 사진 찍자.”

나는 셀프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셔터가 내려간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도려냈다. 사진 속에 ‘순간’을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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