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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4. 2016

04. 왜 사이코패스에게 잘 속을까?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사이코패스들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대상자를 미리 물색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건 아무나 덥석 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적당한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한 번은 사이코패스인 A가 어떤 여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잘 봐. 예쁘다고 아무에게나 작업 걸면 안 돼. 그리고 혼자 있는지도 중요해. 화장이 짙거나 지나치게 당당하게 걷는 여자는 피해야 돼. 보폭이 너무 넓어도 안 되고 팔을 많이 흔들면서 걸어도 안 돼. 팔을 몸에 붙이고 걸으면서 시선은 약간 아래를 향하면 좋아. 너무 아래를 봐도 안 되고 우울한 표정이어도 안 돼.”
  

 
내 생각과는 전혀 반대의 주장이어서 왜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냥 경험인데 그런 사람이 감상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물론 이 말에는 그의 편견이 담겨 있으므로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걷는 모습으로도 대상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캐나다 브록 대학의 안젤라 북(Angela book)이 2013년에 내놓은 연구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는 걷는 모습만으로도 희생자를 고를 수 있다고 한다.
     
47명의 남자에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 후 성향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새로운 12명에게 복도를 통해 실험실로 걸어오게 하면서 걸음걸이를 촬영한 후, 과거에 범죄의 피해자가 된 적이 있는지, 있으면 몇 번이나 그랬는지 설문조사를 통해 답하게 했다. 이제 이 동영상을 두 집단에 보여주면서 누가 범죄피해를 보기 쉬워 보이는지 1에서 10점까지 점수를 매겨보라고 하였다.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집단이 훨씬 성적이 좋았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세상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갖다 놓지 못한다. 물론 늘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면 자기애적 인격 장애가 되지만, 이들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항상 무의식적으로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남들에 자신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애쓰다 보니까 상대방의 결정적인 문제까지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특히 우리 문화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이런 경향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므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수만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형성될까? 우리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시작하였고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수렵, 채집생활을 하면서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어 자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는 맹수나 추위 같은 외부의 위협요인이 너무나 많아 생존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인류의 아기에게는 이런 수많은 위협 속에서 조금이라도 생존확률을 높이려면 부모나 보호자가 될 수 있으면 밀착해서 자신을 돌보게 해야 한다.
     
진화과정에서 인류는 아기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즉 큰 머리와 작은 몸통과 팔다리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눈에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도록 진화되었다. 가령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들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져 모성애를 자극한다. 그리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다. 아기의 측면에서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보호자로부터 유기(遺棄)당하지 않기 위한 인류의 장치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원시적 환경에서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바로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것이다. 원시적 환경에서 보호자에게 버림받거나 멀리 떨어진다는 것은, 완전히 무력한 아기가 맹수나 기아(飢餓)에 노출되어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유기당하면 안 되겠다고 느끼도록 학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번 유기는 곧바로 죽음이기 때문에 아예 학습이 필요 없도록 진화는 유기방지 프로그램을 우리 유전자에 새겨 놓았다. 그래서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본능적 불안이며, 특히 무력한 어린 시절에는 계속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게 된다. 그러나 사회를 이루고 자연과 멀어지면서 맹수나 추위, 기아의 위협은 사라지거나 줄어들었지만, 우리의 본능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유기불안은 아이가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튀어나와 아이의 뇌를 장악한다.
     
여기서 부모나 보호자의 태도가 매우 중요해진다. 만약 부모가 항상 아이 옆에서 일관성 있게 지켜 주고 애정을 준다면, 아이는 유기불안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저 사람들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신뢰를 키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관념을 가지게 하여 자존감(Self-esteem)을 증가시킨다. 결국,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갖다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감은 세상을 좀 더 넓고 과감하게 탐구할 수 있게 하면서 주위를 관찰하며 직관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부모나 보호자가 지속해서 화를 내거나 억압하고 심지어 학대하면서 잘 돌보지 않는다면 유기불안은 바로 작동된다. 또한, 너무 완벽하고 고집스러운 일관성 역시 아이에게 쉽게 공격성을 드러내므로 불안을 유발한다. 당신이 아이에게 화를 낼 때 아이가, ‘내 행동 때문에 화가 나신 게 틀림없어. 귀찮지만 내가 행동을 좀 더 조심해야겠군.’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유기불안이 본능적으로 작동되면서 부모의 보호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쓰게 된다.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이 우는 것이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도록 해서 관심과 애정을 쏟도록 만든다. 혹은 귀찮게 떼를 쓸 수도 있다. 이것은 먹을 것이나 장난감 같은 필요한 자원을 하나 더 얻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들이 잘 안 먹히면 매를 벌 수도 있다.
     
불행히도 유기불안을 느낄 상황이 지속해서 반복된다면, 유전자는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으켜 유기불안을 잠재울 최후의 방법을 아예 뇌에 장착을 시킨다. 유기불안이 지속하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생존에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런 나쁜 상황이 지속할 것으로 예견한다. 그래서 애정과 보살핌을 얻을 마지막 작전이 항상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울거나 떼를 쓰는 건 실패한 작전이므로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고 억압하는 기제를 발동시킨다. 착한 아이로 보여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저는 이렇게 화도 내지 않고 당신 말에 복종해요. 이렇게 착하답니다. 그러니 저한테 약간의 애정을 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이면 되요.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이제야 어른들은 말 잘 듣는다고 칭찬해 주고 어른스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유기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다. 늘 무의식적으로 버려지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착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니 절대 화를 내거나 공격성을 보이면 안 된다. 꾹꾹 눌러 담아야 한다. ‘저 사람들이 나한테 이러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들의 자존감은 이제 땅에 떨어져 자신을 존중하지 못한다.
     
“내가 너의 이런 행동 때문에 화가 났어.”라고 조용하게 말하더라도 충분히 화를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마음은 좀 더 편해질 것이다. 또한, 아이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였다는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하고 고쳐나갈 수 있게 한다. 이제는 폭력을 합리화하는 사회적 문화의 대물림을 끊고, 우리 후손들을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길러 공감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 제로들이 최소화될 것이며, 설령 있더라도 사회의 규칙을 잘 받아들여 누군가를 쉽게 착취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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