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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5. 2016

01. 대치동 엄마들의 속사정

<대한민국 엄마 구하기>

전국을 다니면서 제가 만난 우리나라 엄마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혼란’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는지, 엄마로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아이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아이 교육에 자신 있는 엄마를 찾는 일은 가물에 콩 나듯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혼란스럽다!

오바마가 칭송할 정도로 아이 교육에 적극적인 우리나라 엄마들인데 정작 혼란에 빠져있다니, 큰일 아닌가요? 문제는 엄마들은 자신이 혼란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혼란에 따른 심각한 문제들이 지금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엄마가 혼란을 원할까요? 하루빨리 혼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한 엄마가 되고 싶을 뿐이겠지요. 저는 엄마들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문제에 항상 부딪혔습니다. 엄마들의 근심과 걱정을 하나하나 해결해주는 식으로 접근하면 당장은 좋아지지만,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혀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뿌리를 찾아 송두리째 캐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증요법이 아닌 근본적인 원인 치료 차원에서 엄마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저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부모로서의 우리 삶이 예전보다 한층 복잡해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복잡한 여러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줄 새로운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표준적인 규범이 없다는 것만큼 난처하고 까다로운 상황은 없다.” _ 제니퍼 시니어, (2014). 《부모로 산다는 것》, RHK, 15
   

  
《부모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쓴 저자인 제니퍼 시니어는 혼란의 뿌리를 부모들의 문제가 아니라 ‘표준적인 규범’의 부재로 설명합니다. 그는 급격한 사회 변화에 맞춘 부모 역할에 대해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이유가 분명 따로 있을 거다!’

제가 부모 역할, 특히 엄마 역할의 혼란과 관련하여 주목하는 사회 변화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엄마 역할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경험이 많은 조부모가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아이 나이와 엄마 나이는 같다는 말처럼 아무리 어른이지만 엄마로서는 초보인 상태에서 부모 노릇 하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 엄마 역할을 하는 후배 엄마의 미숙함을 조부모들이 대부분 잘 보완해주었습니다. 또한,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는 형과 누나, 오빠와 언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핵가족화되면서 후배 엄마들은 곤경에 처합니다.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혼자서 엄마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 비슷한 맥락이지만 어른들이 사라진 상황도 요즘 엄마들을 매우 힘들게 만듭니다. 어른들이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갓난아이들에 대한 응급 처방도 《삐뽀삐뽀 119》를 뒤적이면서 겨우 수습합니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인터넷이나 책을 보면서 대처합니다. 서로 모순된 내용을 담은 다양한 정보를 늘어놓고 불안한 심정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지혜를 물려줄 어른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후배 엄마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여러 이웃이 함께 모여 오래 살았던 마을이 사라지고, 대부분 고향을 떠나 옆집과 왕래가 없는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상황도 후배 엄마들에게는 위협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예전의 상황에서는 후배 엄마들도 무난히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들은 고립된 상태에서 오히려 옆집 엄마들과 경쟁하거나 서로 견제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요즘 대부분 엄마가 겪는 혼란과 불안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 글로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 엄마들에게는 ‘표준적인 규범’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이웃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른들의 지혜를 빌리고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표준적인 규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엄마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했던 시대에 산 예전 엄마는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를 남들보다 잘 키우기 위해 애쓰며, 앞으로 생길 문제를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혼자서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다르고,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또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진 아빠들과 상의할 시간도 없이, 거의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요즘 엄마들을 보면 사면초가가 딱 맞는 말입니다. 표준적인 규범의 보호를 받으면서 어렵지 않게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예전 엄마들보다 요즘 엄마들은 거의 만능이 되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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