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일간의 엄마>
나오에게
잘 지내?
나는 많은 분의 힘을 빌려 그럭저럭 해내고 있어.
참, 그래, 이 말을 해둬야지. 우리 아들, 말썽쟁이야~! 떼쟁이에 어리광쟁이에, 누굴 닮았는지…… 정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니까. 최근엔 손 붙잡고 같이 밖에도 걸어 다니게 되었어. 굉장하지?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보고 있는 거지?
사실 말인데, 역시 나오랑 같이 기뻐하고 싶어. 뽈뽈뽈 기어 다니고, 붙잡고 일어서고, 아장아장 걷고, 바이바이 인사도 하고, 이름을 부르면 “네” 하고 함박웃음 지으며 손을 들어 보여……. 함께 기뻐하고 싶다.
나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라면 뭐라고 말하려나.
미안, 이런 말 하면 또 걱정할 텐데. 응, 괜찮아. 모두 함께있어. 나, 혼자가 아니야. 그러니 안심해.
새삼 이런 말 하려니 쑥스럽지만, 1년 9개월이라는 결혼 생활, 정말 감사해. 집에는 사진이 한가득 있어. 나오의 상냥하고 따뜻한 표정. 나와 나오의 소중한 보물,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성장하면 나오에 대해, 엄마에 대해 잔뜩 가르쳐줄게. 반드시 전해질 거야, 나오의 마음. 어느 사진이고 다 최고의 웃는 얼굴이니까.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그래.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조차 나오는 웃고 있어. 항암제 부작용으로 입안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구내염이 생겼을 때도. 내가 힘들어서 축 처져 있을 때도 나오는 웃고있어. 다케토미 섬 여행 때도 그랬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이미 오래전에 모든 게 다 힘들었으리란 걸……. 하지만 그때 나오의 웃는 얼굴은 멋져. 정말 최고로 멋져.
나오는 언제나 웃고 있었어. ‘과거형’이 견딜 수 없이 싫지만, 슬플 때도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늘 웃고 있었어. 언제나, 항상, ‘주변 사람’을 위해 웃고 있었어.
잔뜩 이야기해줄 거야.
우리 둘의 아이에게, 엄마의 강인함과 상냥함을.
자기 아내를 너무 칭찬하면 안 되는데.
나오의 쓴웃음이 눈에 아른거리네.
하지만 이건 자랑이야. 정말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어.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근사했는지, 아이에게 잔뜩 이야기해줄 거야.
사진 앞에서 이 사람이 ‘엄마’고, 이 사람이 ‘아빠’라고 가르쳐주고 있어. 신기한 게 저도 아는지, 빽빽 울다가도 사진 앞에서는 울음을 딱 멈춰. 그리고 ‘아~ 아~’ 하는 거야.
그래도 역시 슬프고, 외롭다.
하지만 반드시 앞을 향해 갈 거야.
더 이상 나오에게 걱정 끼칠 수 없어.
난 괜찮아.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모두 도와주고 있어.
이것도 나오 덕분이야.
그래서 말인데 하나만 부탁할게.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를 걸어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줘. 나오의 아들을 지켜줘.
이런 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텐데, 미안.
으음, 안 되겠다. 역시 눈물이 나네. 한심하게…….
안 돼, 안 돼, 난 ‘아빠’이자 ‘남편’이야.
이런 모습, 아들에게 보이면 안 되겠지?
괜찮아. 난 나오에게 강인함과 상냥함을 배웠어. 웃는 얼굴의 근사함을 배웠어.
나오가 그랬지.
“병에 걸린 사람이 켄 씨가 아니라 나여서 다행이야”라고.
강한 사람, 착한 사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오. 할 수 있을까, 나.
“문제없어요. 켄 씨라면 틀림없이 할 수 있어요.”
나오라면 그렇게 말하겠지.
속상하네……. 역시 눈물이 난다.
곁에서 말해주면 좋겠다. 살며시 팔짱 껴주면 좋겠다.
정말 속상하다. 난, 지키지 못했어. 뭐냐고, 정말.
그래도 있지, 건강한 우리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어. 이 아이를 절대 외롭게 만들지 않을 거야. 절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도와주고 있어.
정말 모두에게 감사해.
나오가 곧잘 말했지.
“모두에게 고마워”, “난 괜찮아”라고.
눈물의 의미를 바꿔갈 거야.
흐르는 시간을, 또렷이 새겨나가도록 할 거야.
주변에 따뜻한 사람이 많이 있고, 여러모로 도움도 받고 있어. 진심으로 모두에게 감사해. 나오 몫까지 전하며 살게. 하지만 솔직히, 단 하나의 온기가 필요해. 목소리가 듣고 싶어. 미안, 또 걱정 끼치고 있네.
한 가지만 약속해줘.
앞으로 오래도록 아들 곁에 있어줘.
난 괜찮으니까.
나오. 나오랑 살아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안심해.
나오랑 둘이서 지켜온 것을 앞으로는 내가 지킬게.
으음, 역시, 목소리가 듣고 싶고, 온기가 그립다.
한없이 슬픔에 잠겨 지내는 날도 있어.
하지만 앞을 향할 거야.
향할 수 없어도 어떻게든 앞을 향할게.
할 일이 산더미야.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어.
나오는 정말 여러 가지 숙제를 내주었어.
큰일이야, 이 숙제.
하지만 계속 물으면서 살 거야.
해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생각해. 뭐 이런 슬픈 일이 다 있나, 하고.
‘마음’은 여기 있다는 거 알고 있어. 그래도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 아직 믿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우리 아이’의 첫 번째 생일. 한심하게도 난 내내 울기만 했어. 그랬더니, “오늘은 나오 씨가 애쓴 날이잖아. 그러니 웃으며 보내야 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 그래, 맞아.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어. 알고는 있는데…… 안 되지, 이러면…….
슬프지만, 사람이 이토록 따뜻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
이런 말 하긴 싫다. 지금도 곁에 있어주길 바라니까.
하지만 정말 애 많이 썼어, 나오.
끝으로, 나오는 ‘엄마’야. 이 세상 하나뿐인 최고의 엄마야.
우리 두 사람의 아이를 반드시 지켜 보일게.
이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거야.
고마워, 나오.
정말, 고마워.
- 앞으로도 ‘셋이서’ 살아갈 아빠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