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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17. 2016

07. 왜 보이스 피싱은 어설플까?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보이스 피싱 사기꾼들이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그들의 수법이 노련해진다고 하더라도 보이스 피싱 전화가 걸려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어설픔은 어쩔 수 없다. 그 어설픔은 어쩌면 의도된 것일 수 있다. 그들은 모두가 걸려들기를 원하여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어설픈데도 쉽게 걸려드는 귀가 얇거나 순진한 사람들이 목표이다. 즉, 쉽게 겁을 잘 먹고 무턱대고 잘 믿는 그런 사람들이 사기를 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그 외의 사람들을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가 바로 가끔 웃음이 나올 만큼의 어설픔인 것이다. 그들이 좀 더 정교하게 시나리오를 짜는 이유는 사람들 역시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일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또한, 보이스 피싱을 하는 집단이 많아지면서 경쟁해야 하므로 속이는 대상을 더 확대할 필요성도 있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을 불안하게 하거나 위압적인 태도로 당신에게 뭔가를 하도록 주문하는 전화에 응대하지 말고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더라도 당장 계좌를 옮기거나 송금을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또한, 경찰과 검찰 역시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며, 당신이 응대하지 않는다고 권위를 내세우며 보복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대상자가 되는 데에는, 그들이 권위에 더 쉽게 복종한다는 특성도 한몫한다. 보이스 피싱은 대부분 경찰 · 검찰 · 정부기관 그리고 금융회사 등을 이용하여 권위를 앞세운다. 이런 권위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위대한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전기충격 실험에서, 10명 중 6~7명의 피험자는 유리 벽 건너 전기충격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죽을 수도 있는 높은 전압의 전류를 흘려보내는 버튼을 눌렀다. (물론 전기충격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연기자였으며, 버튼을 눌러도 전류는 흐르지 않았다) 단지 가운을 입은 권위자가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하얀 가운 대신에 권위가 없는, 즉 평상복 차림의 평범한 남자가 책임자로 나서자 복종 비율이 20%로 떨어졌다. 이토록 우리는 권위의 위력 앞에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도 내팽개칠 정도로 공감 회로를 꺼버린다.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것 역시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진화된 본능적 행동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나게 굴지 말고 조용하게 살라고 어른들로부터 배웠다. 무조건 복종하고 지내라는 뜻이다.
     
내 아들이 어릴 때 두통과 구토를 해서 아내는 근처 소아과로 데리고 갔다. 모 대학병원에서 교수를 했던 의사라고 해서 더 신뢰하고 데려갔지만, 관장만 하고 배탈약만 받아 왔다. 나는 당연히 뇌수막염을 의심했으므로 위장관의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을 기대했다. 그런데 단순한 배탈로 보다니 내가 틀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도 아이의 증상은 계속되어, 아내는 다른 소아과로 진료를 보러 갔다. 근무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관장한다며. 나는 아내에게 혹시 뇌수막염으로 인한 게 아닌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의사가 화를 낸다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그들에 대한 신뢰를 접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소아과 의사를 생각했다. 학생 시절 교수님 한 분이 생각났다. 그는 가장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이셨다. 그분이 일하고 계신 곳을 알아보고 바로 아이를 데리고 갔고, 아이를 보자마자 바이러스성 뇌수막염으로 진단하고 입원치료를 하였다. 이틀 만에 좋아지고 삼 일째 퇴원해서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판단에 좀 더 유리한 면도 있었지만, 아내 역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직관적인 면에서는 내가 의사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고 느낀 의사가 화를 내서 복종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하였을 때, 우리가 그대로 따랐다면 아들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도 같은 의사였기 때문에 나를 그와 같은 동급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고압 전류 버튼을 누르는 것에 반기를 든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권위자의 위치를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더는 원시 사회나 봉건적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므로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개념을 사회적으로 발전시켰다.
     
아마 여러분은 그랬다가는 회사에서 쫓겨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는 사장이나 상사한테 함부로 대들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오진을 하고 질문에 화를 낸 의사에게 대들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의 권위를 거부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면서 일을 제대로 해결했을 뿐이다. 즉 권위에 자신의 존엄까지 내놓지 말라는 뜻이며,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합법적이고 명시적인 권위에 존경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에 필요한 자세이지만, 조건 없고 반사적인 복종심을 가지거나 혹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면 비열한 사기꾼들에게 먹잇감으로 당하기 쉬운 사람이 될 뿐이다. 
     
뉴올리언스 대학의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폴 프릭Paul Frick에 따르면,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있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전조로써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5세 이전에 치료를 시작하면 공감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가정과 교육시설에서 공감능력을 키우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공동체적 생활이 회복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상호연관성은 사이코패스들이 그 사회의 규율을 어릴 때부터 습득하게 하여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활동하게 한다. 한 연구에서 공동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 서구 세계보다 현격히 낮은 사이코패스 유병률을 보였다.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생명의 존엄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란다면 어릴 적부터 개구리 한 마리를 죽이더라도 주위에서 생명의 가치와 존중의 마음을 가르쳤을 것이다. 
     
공감의 원천인 가정에서 아이들과 눈 맞출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다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이들과의 시간을 소홀히 하고,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진정한 교육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이 교정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공감 제로들이 우상화되는 세상일수록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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