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공감 제로들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할 때 주로 죄책감을 이용한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흔하게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어.”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다.)
“네가 정신 차리지 못하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네가 안 태어났으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야.” (태어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도덕적 신념을 들먹거리기도 한다.
“가족끼리 돕는 건 당연한 것 아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물론 이런 말들은 누구든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공감 제로들은 상대를 조종하려고 일부러 사용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죄를 짓거나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 잘못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면 당신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대부분은 자신을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비난을 들으면 처음에는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친절하지 않고 무관심하며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는 건 아닐까?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쉽게 죄책감을 느끼고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거절을 못 하게 된다. 특히 자신에 대한 확신이 떨어질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지만, 확고한 확신이 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거절을 못 하는 데에는 사회적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기저에 깔렸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상처 줄까 봐 두려워한다. 또한, 배은망덕하다는 평판이 날까 봐 두렵고 갈등이 생길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흔드는 일은 뜻밖에 간단해진다.
이런 두려움을 심어 주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원하는 대로 조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처음 가지고 있는 생각과 원칙들을 고수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언젠가 좋아질 거라며 위로하며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자세는 당신을 조종하기를 원하는 공감 제로들에 좋은 먹잇감이 된다.
분명히 밝히지만, 당신이 인정받고 싶은 다른 사람 중에 그들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의심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가 가진 통념을 무시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인 시선과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이 괴로울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이전 패턴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스스로 이전 패턴들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없다.
“이번 주 토요일에 뭐해?”
“왜?”
“별일 없으면 춘천으로 놀러 안 갈래?”
“이번 주는 당직도 많고 해서 피곤하니까 그냥 쉴 거야.”
“그러지 말고, 내가 이번에 새로 사귄 애 데리고 올 테니까 너도 혹시 애인 있으면 데리고 와. 없으면 내가 한 명 더 데리고 나갈게. 그리고 밥도 내가 산다니깐?”
“음. 저번에도 그래놓고 내가 밥 사지 않았나? 나는 애인도 없고 피곤하니까 혼자 잘 다녀와.”
“와, 그걸 기억하고 있냐? 생각보다 쪼잔한 구석이 있네.”
“내가 그런 줄 몰랐어? 그러니 둘이 잘 갔다 와.”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정말 이러기야?”
“그건 네 생각이고.”
“알았어. 정말 섭섭하네. 얘네 친구들 다 예쁜데. 네가 좋은 기회 놓치는 줄 알아.”
“관심 없어. 끊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 이 친구는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운전면허가 정지된 상태이다. 그는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차를 운전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나를 움직이기 위해 선심을 쓰는 척하며 내가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조종하고 있다.
만약 나를 조종하려는 의도가 없는 사람이라면 나의 반응은 당연히 이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는 늘 누군가를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므로 항상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그의 생각과 의도가 내 마음속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생각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