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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1. 2016

04. 식용식물로 생존을 모색하라.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가장 중요한 농작물. 밀, 쌀(벼), 옥수수, 보리, 귀리, 호밀, 기장, 수수.(위 왼쪽부터)


농업이란, 우리가 농작물로 선택한 식물의 생명 주기에서 한 단계를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식물이 자신의 구조에서 특정한 부분을 이듬해에 사용할 햇빛 에너지의 저장고나 다음 세대, 즉 씨앗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이용한다. 이 부분이 영양분을 잔뜩 담고 있어 슈퍼마켓 선반을 채우게 된다. 
     
우리가 먹는 뿌리채소 대부분과 줄기채소는 이년생 식물이어서, 두 번째 해에 꽃을 피운다. 이런 식물들의 번식 전략은, 특별한 목적에서 확장된 부분에 한 계절 동안 수집한 에너지를 비축한 채 활동을 중단하고 겨울을 넘기면 이듬해 초봄에 비축한 에너지를 활용해서 경쟁자들보다 앞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것이다. 곧은 뿌리 식물의 예로는 홍당무와 순무, 스웨덴 순무, 무와 비트가 있다. 
     
이런 식물을 재배해서 불룩하게 자란 부분을 수확한다는 것은, 그 식물들이 생장기에 조금씩 비축한 에너지를 약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엄격히 말해서, 감자는 뿌리채소가 아니다. 우리가 감자라고 먹는 덩어리는 줄기에서 부풀어진 부분이다. 한편 에너지의 저장고로 잎을 사용하는 식물들도 있다. 양파와 리크, 마늘과 쪽파가 대표적인 예로 굵어진 잎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덩어리라 생각하면 된다. 콜리플라워(꽃양배추)와 브로콜리는 실제로 완전히 개화되지 않은 꽃이며, 일찍 수확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열매는 해당 식물의 씨앗에게 에너지 저장고와 다를 바가 없다. 자두 씨를 완전히 감싸고 있는 두툼한 과육을 생각해보라. 한편 밀 같은 곡물의 경우에는 낟알이 식물학적으로 일종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유목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한 곳에 정착해서 주변의 농경지를 개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농작물로 선택한 식물의 수확량에 완전히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선택이 제공하는 식물의 영양을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바람직한 형질을 기초로 번식하는 식물을 선택하는 품종개량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식물의 생물학적 구조에서 일정한 특성을 강화하고 달갑지 않은 특성을 억눌러왔다. 
     
식물의 번식 전략을 우리 목적에 맞추려고 난도질하는 과정에서 식물의 생물학적 구조는 심하게 왜곡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해 식물에 의존하는 만큼이나 식물도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오늘날 괴물처럼 커다란 토마토부터 성장이 억제된 대신 낟알만 굵어진 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재배하는 모든 작물은 그 자체로 과학기술의 산물, 즉 유전공학자들의 작품이다. (요즘 우리에게 당연히 여겨지는 홍당무의 색깔도 인공적인 것이다. 홍당무의 뿌리는 원래 흰색이나 자주색이다. 주황색을 띠는 변종은 17세기 네덜란드 농학자들이 오라녜 공 빌럼 1세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조작해낸 것이다.)
     
지상에는 식용식물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문명사회는 지난 수천 년 전부터 극히 일부만 선택해서 품종을 개량해왔다. 현재 인위적으로 재배되는 품종은 7,000여 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2종만이 현재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남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형성된 주요 문명사회는 세 가지 주된 작물 ― 옥수수와 쌀과 밀 ― 을 기초로 세워졌다. 이 작물들은 종말 이후에 농업을 다시 시작할 때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옥수수와 쌀과 밀은 물론이고 보리, 수수와 기장, 귀리와 호밀도 중요한 곡물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육류의 대부분이 목초지에서 풀을 뜯거나 사료를 먹는 가축에서 얻어진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 곡물들이 우리 식단에서 주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풀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종말 후의 생존자들도 이 곡물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감자는 밭에서 파내고 양파는 뽑아내고 사과는 가지에서 따면 된다. 이처럼 많은 농작물의 수확이 복잡하지 않아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가능하지만, 몇몇 곡물의 경우에는 밭에서 수확해서 식탁에 올리려면 약간의 가공이 필요하다. 예컨대 옥수수의 경우에는 수확이 무척 간단해서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고랑을 따라 걸으며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뽑아내면 그만이지만, 낟알을 거두기가 상대적으로 성가신 곡물이 적지 않다.
     
작물을 통째로 베어낸 후에 밭에서 곧바로 낟알을 거두는 단순한 방법이 사용된다. 수확에 사용되는 연장에는 낫(sickle)과 큰 낫(scythe)이 있다. 낫은 짧게 굽은 날이 손잡이에 박힌 연장이며, 간혹 날이 톱니 모양을 띠기도 한다. 낫을 쥐지 않은 손으로 줄기들을 다발로 잡은 후에 단번에 베는 데 쓰인다. 큰 낫은 날이 무척 크며 양손을 사용하는 연장이다. 손잡이가 두 곳에 있는 긴 장대와 완만하게 굽은 날로 이루어진다. 날은 길이가 대략 1m고, 장대와 직각을 이룬다. 낫에 비해서 큰 낫을 제대로 다루려
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두 팔을 쭉 뻗은 자세로 날을 땅과 수평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면 된다. 이때 몸 전체를 부드럽게 비틀면 한층 더 자연스럽게 큰 낫을 휘두를 수 있다. 
     
쓰러진 줄기는 다발로 묶이고, 그렇게 묶인 다발들은 밭에 차곡차곡 쌓인 채 건조되면 가을비가 내리기 전에 헛간으로 옮겨진다. 수확물을 거둔 후, 다시 말해서 뿌리는 씨를 거둔 후에는 낟알을 분리해내야 한다. 이 과정을 타작 혹은 탈곡(threshing)이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수확물을 깨끗한 바닥에 펼쳐놓고 도리깨로 때리는 방법이다. 도리깨는 긴 손잡이의 끝에 하나 이상의 짧은 휘추리를 가죽이나 경첩으로 매단 연장이다. 소형 탈곡기는 쇠못이나 철사 고리로 뒤덮인 회전 원통을 둥근 통의 안쪽에 꼭 맞게 끼운 농기계이다. 이삭이 틈새를 지나갈 때 낟알을 떨어내고 아래쪽에 설치된 철망으로 낟알과 이삭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도리깨와 똑같은 원리를 사용한 농기계이다.
     
이런 탈곡이 끝나면 낟알은 빈 껍질과 뒤섞인 상태로 있게 된다. 따라서 낟알과 겉겨를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은 ‘키질(winnowing)’이라 일컬어진다. 탈곡한 곡식을 바람이 부는 날에 공중에 살짝 띄우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겉겨와 짚은 바람에 살짝 날려가지만 무거운 낟알은 도로 바닥에 떨어진다는 게 키질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현대식 기계장치는 선풍기를 이용해서 인공적인 바람을 일으킨다는 게 다를 뿐, 기본적인 원리는 과거에 사용되던 원시적인 방법과 똑같다. 
     
종말 후에 사회가 다시 세워지고 인구가 증가할 때,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식량을 생산해서 많은 사람이 도시에 거주할 수 있도록 농업의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의 하나는 이런 다양한 과정들을 통합하는 것이다. 오늘날 콤바인은 단독으로 시간당 20에이커의 밀밭을 처리할 수 있는 농기계이다. 따라서 큰 낫보다 거의 100배나 빠른 속도로 수확할 수 있는 셈이다. 
     
수평으로 배열된 톱니 모양의 칼날이 큰 낫의 손동작을 기계적으로 모방해서 좌우로 움직이며, 커다란 원통에 달린 갈퀴들이 회전하며 끌어당긴 곡식 줄기들을 잘라낸다. 기본적인 설계는 거의 두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아, 말이 끌던 최초의 기계식 수확기는 요즘의 콤바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콤바인은 많은 사람을 힘든 밭일에서 구해주며 복잡한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근대사에 크게 영향을 준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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