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2017>
인간의 뇌를 훈련하는 것이 가능할까?
두뇌훈련을 통해 인지 기능을 향상한다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도 2005년에 발매된 닌텐도 DS용 게임인 ‘매일매일 DS 두뇌 트레이닝’이 크게 성공을 거둔 이후였을 것이다. 이 게임은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TV 광고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뇌에 관한 관심은 학계와 산업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유럽연합은 2013년부터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시작해 10년 동안 10억 유로 이상을 뇌 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도 2013년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를 발표했으며, 뇌과학 분야에 12년에 걸쳐 45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일본과 중국 역시 대규모 뇌 연구 계획을 추진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뇌 연구에 지원과 관심이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1998년에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하고 2011년에는 뇌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뇌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뇌 연구의 성과가 교육 및 건강 산업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이 두뇌훈련(Brain fitness) 산업이다. 신체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고 체력을 늘리듯이 뇌를 사용하고 훈련해서 인지 기능을 향상할 수 있다는 게 두뇌훈련의 기본적인 가정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게임 형태의 두뇌훈련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다양한 업체가 등장했고, 두뇌훈련 시장의 규모는 2020년에는 약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루모시티(Lumosity)를 비롯한 대부분의 두뇌훈련 회사들은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두뇌훈련의 효과에 대해서는 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2014년 10월 70여 명의 연구자가 시중에 판매되는 두뇌훈련 프로그램들이 광고하는 효과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두뇌훈련의 효과가 전이될 수 있는가이다. 즉 두뇌훈련 제품을 사용하면 그 제품만 더 잘 쓰게 되는지 아니면 새로운 과제에도 잘 적응하고 일반적인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 등 다른 분야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는지, 나아가 알츠하이머도 예방하고 치료하는 등 광범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두뇌훈련의 광범위한 인지 기능 향상 효과를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그중 상당수가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고 통계적 검증력이 부족하거나 적절한 통제 조건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연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두뇌훈련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그 효과가 장기간 지속하는지, 인지 기능이 향상되는 정도가 통계상으로만 유의미한지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크기인지 등도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모든 연구자가 두뇌훈련 상품의 효과에 회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2014년 12월에는 두뇌훈련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공개서한을 반박하는 다른 공개서한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서한에 서명한 100명 이상의 연구자들은, 실험조건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연구도 있었지만, 이전에 지적된 한계점을 보완한 최근 연구에서도 인지 기능 향상 및 전이 효과가 발견되었고, 이러한 결과는 동료심사 과정을 거쳐 논문으로 출판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두뇌훈련의 효과에 대한 논란은 학계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6년 초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루모시티에 2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루모시티는 연방거래위원회의 결정 이후에도 학술논문을 인용하며 자사의 게임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고, 언어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게임을 출시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논란 속에 있는 회사는 루모시티만이 아니다. 시각정보처리 능력을 훈련하는 앱을 개발한 미국의 캐럿 뉴로테크놀러지(Carrot Neurotechnology)는 루모시티의 경우와 유사하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연방거래위원회로부터 1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캐럿 뉴로테크놀러지는 자사의 앱으로 훈련한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야구팀 선수들은 시력이 향상되고 시야가 넓어지는 등의 효과를 보았고 그 결과 예년과 비교하면 4~5승 가량을 더 올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결과는 동료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게재되었고, 캐럿 뉴로테크놀러지는 이 논문을 포함한 여러 학술논문을 인용해 시각훈련 앱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연방거래위원회는 출판된 연구논문이 있더라도 이중맹검(Double-blind)을 하지 않았고, 위약 효과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점이 있어서 과학적인 증명이 끝났다고 단정 짓기는 이르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닌텐도의 ‘두뇌 트레이닝’ 게임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에도 유사한 논란이 벌어졌다. 비록 게임을 통한 인지 기능 향상의 효과가 확실치 않다고 해도 ‘두뇌 트레이닝’은 닌텐도 DS 게임기로 즐길 수 있는 여러 게임 중 하나였을 뿐이고, 닌텐도도 두뇌훈련 전문기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모시티나 캐럿 뉴로테크놀러지처럼 인지 기능 훈련 프로그램만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사정이 다르다. 주력 상품인 두뇌훈련 프로그램이 광고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