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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Sep 07. 2020

"제가 잘 모셔야지요"

군법무관 이야기 (2) - 부사관 

군복무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각자 부사관에 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공군본부 생활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사관님들과의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한다. 


 나무위키에서 군법무관을 검색하면 <법무부사관과의 관계> 라는 목차가 따로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 군법무관의 불가결한 손과 발같은 존재이다. 특히 과장급은 10~20년의 짬이 있어 사건처리에 대한 감이 있고 부대의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참모로서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중하사의 경우 군법무관과 나이대가 유사해 어느정도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으나 상사나 준위의 경우 나이차가 보통 띠동갑수준으로 나기때문에 서로를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보병으로 치면 갓임관한 소대장과 행정보급관의 관계같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상사 이상의 부사관 및 준사관의 경우 법무관과 상호 존대를 하며 특히 보통 단기법무관의 마인드가 반(半)군인-반민간인의 마인드인 경우가 많아서 그저 사회에서 만난 성인들 대하듯 한다.
군법무관은 군인이자 법조인으로서 전역하면 법조3륜인 판사, 검사,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판검사 또는 변호사 등 법조인들과 법원공무원, 검찰수사관, 법률사무원 등의 보조직들과의 관계는 장교-부사관의 관계와 비슷하다. 젊은 전문직 자격소지자와 나이든 실무자들과의 어색하다면 어색한 관계는 평생 이들을 따라다니는 것이며, 딱히 군대 계급이라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는 항상 사람 by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하필 좋은 분들만 계셨던 걸까. 부사관님들과의 기억은 공군본부 생활 중 가장 좋았던 기억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장기 법무관들은 직속 상관들이시니 자연스레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사관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군대가 어떤 조직인지에 관해서는 이 분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내 친구가 부임하는 부대로 이동하시게 된 부사관님과의 대화다. "잘 부탁드린다"는 내 의례적인 말에 부사관분은 "제가 잘 모셔야죠~" 라고 받아넘기셨다. 너무 신기했다. 물론 티내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넘겼지만. 사회에서도 그런 말을 쓰는지가 궁금했고, 아마 그룹 회장님 정도 아니고서야 사장된지 10년은 됐을 것 같은데. 글이 아닌 말로 그 단어를 들어 본 건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신기했다. 게다가 그 대상은 20대 후반의 새파랗게 어린 법무관이라니.  

              

'모신다'는 단어에서 순수한 직업의식이 비쳤다. 멋있었다. 법무관을 도와서 형사, 징계, 소송 등 실무를 수행하는 게 법무부사관의 업무이기는 하나, '모실' 필요까지는 없다. 그게 우리 세대의 생각이다. 우리 세대는 평생 누군가는 '모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 거다. '모시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배웠다. '모셔지기' 위해서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행복을 유보해 왔다.

             

"제가 잘 모셔야지요~" 라는 부사관님의 한 마디에, 생각보다 많은 게 담겨 있었다. 

모시는 사람인지, 모셔지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일하느냐가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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