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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Sep 09. 2020

너무 쉬워 불편한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을 읽고

한국소설을 좀 읽어야겠다, 라는 막연한 부채의식을 지고 리디북스 홈페이지를 드나들다 발견했다. 안 그래도 빠른 페이지 넘김 버튼이 두 배는 빨리 넘어갔다. 쉽고 재미있게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날 괴롭혔다. 뭐가 괴로운지,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너무 쉬워서였다. 아무 것도 아닌 내용이어서였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 능력으로 학교에 닥치는 여러 난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솔직히 참신한 주제로 쳐줄 수는 없다. 해피엔딩으로 닿는 성긴 줄거리 속에 이어지는 옴니버스식 이야기들도 귀여운 수준의 갈등들로 채워져 있다. 초현실적인 갈등을 아무렇지 않게 슥슥 베어내는 뻔뻔한 전개. 쉽게 읽히는 건 보통 좋은 일이지만, 정도가 조금 심하다 느꼈다. 읽는 내내 나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인가, 하고 답답했다. 한국소설 상위권이던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얼른 읽고 치워버려야지. 하고 페이지를 슥슥 넘겼다.




그 답답한 마음은 '작가의 말'에서 깨어졌다.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즐겁게 쓴 이야기라 영원히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다시 또 이어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 보라고 쓴 문장들일까. 저 두 문장이 내게는 꽤 충격이었다. 오로지 쾌감만을 위해서 쓴 이야기라니. 그럴 수도 있구나. 글쓰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데. 쓰다 보면 자연히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렇게나 힘을 빼고 쓸 수가 있구나. 그래서 내가 답답했구나. 아직 힘 뺄 줄도 모르는 아마추어라서. 힘을 있는 대로 뺀 프로의 글에 괜히 불편해 몸을 비비 꼬고 있었구나. 꽤 부끄러웠다. 재미있는 글, 쉬운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게 엄격 근엄 진지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괜시리 뒷머리를 긁적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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