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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Sep 14. 2020

스마트폰 쓰는 훈련소가 있다?

군법무관 이야기 (3) 훈련소 입소


기억력이 딸리고 주의력이 산만한 편인 내가 어떤 불규칙적인 일련의 숫자를 기억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여자친구와 처음 만난 날, 휴대폰 번호, 심지어는 탄신일까지 순간! 잊어버려서 생명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2019년 5월 13일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바로 내가 늦깎이로 머리를 깎고 육군학생군사학교(학군교)에 입교한 날, 속칭 '군대 간 날'이다.






법무관으로 근무할 120명 남짓의 후보생들과 가족친지까지, 500명 정도를 모아 놓은 강당은 너무 넓어서 휑했다. 통념상 군인의 훈련소 입영 장소는 한숨과 걱정, 눈물로 경건한 분위기다. 그러나 그 날의 학군교 강당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변호사시험 합격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세상을 모두 가진듯한, 무식하면 용감한 천하무적 새내기 변호사들이었다. 분위기는 차라리 유쾌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가슴 속에 한 조각 불안함을 갖고 있긴 했지만, 어건 모두가 웃고 있었다.



이윽고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면 경을 칠 일이다.) 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일순 긴장. 처음 맞닥뜨리는 군인. "당신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군인입니다. 현 시점부터 이빨 보이면 죽습니다" 라고 하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는 불안과 온갖 상상이 안 그래도 휑한 강당을 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교장님의 발언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온건(?)했다. 훈련소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나면, 군이 필요로 하는 법무관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뭐 이런 예상가능한 이야기들.




...고백하건대 훈시내용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어서 교장님은 후보생들의 휴대폰 소지가 교육 내내 허락될 것이다, 라고 폭탄선언을 하셨기 때문이다. 까까머리 변호사들은 그게 귓구멍이라도 되는 양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게 무슨 말인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장담컨대 휴대폰 반납은 입대의 부작용 중 넘버 쓰리 안에는 만장일치로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을 소지해도 된다니. 드러내 놓고 환호성을 지르는 후보생은 없었지만 다들 행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의 앞날에 펼쳐질 재앙은 까마득히 모른채로...




...사실 그런 재앙 따위는 없었고, 법무92기의 학군교 생활은 평탄했다. 교관님들이 정말 좋으셨고, 늙고 병든 후보생들의 형편을 잘 배려해 주셨다. 사실 나는 휴대폰을 쓰는 건에 관하여서 내심으로 약간 애석하였다. 심각한 스마트폰 중독에 지친 나는 훈련소에서 '타의적 디지털 디톡스'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기적인 독서와 글쓰기, 취침 소등 후 가부좌를 동반한 명상... 은 교장님의 훈시 한마디에 망상이 되었다. 훈련소가 또 버리는 시간이 오죽 많은가. 훈련소 생활 2달 간 시력이 족히 0.1은 감퇴했을 거다. 주말이면 널브러져 하스스톤 삼매경에 빠졌다. 너만 안 쓰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테지만 사람 마음이 어째 또 그런가. 난 그런 강단 있는 사람이 별로 되고 싶지 않다.




사실 내 훈련소 생활을 떼어 놓고 보면 모범적인 동기 후보생들에 비해 약간은 우당탕한 편이었다. 한 건은 구보를 하다가 발목 인대를 다친 사건, 그리고 한 건은 영내 치킨집(물론 후보생들은 출입 금지다)에서 몰래 치킨을 먹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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